매일신문

야고부-자폐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 군의 휴먼 스토리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을 감동으로 물들이고 있다. 달리기를 앞둔 아들에게 그 어머니가 "형진이 다리는?"이라 묻고 아들은 어눌한 발음이지만 한껏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백만 불짜리~"라고 답하는 장면은 가슴 뭉클하게 한다. 세상사엔 천진무구하지만, 이미 자폐의 단단한 껍질을 조금씩 깨기 시작한 배군은 요즘도 각종 마라톤 대회에서 '희망의 전령사'로 힘차게 달리고 있다.

◇ 스위스의 정신병 학자 E. 브로일러가 처음 사용한 용어인 자폐증(自閉症)은 문자 그대로 세상을 향한 문을 스스로 닫아 버리는 정신질환을 말한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지도 않고 대화도 하려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사는 듯 꿈꾸는 듯한 표정일 때가 많다. 현대 사회의 부적응증이랄까, 이처럼 자기 내면 세계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이 갈수록 느는 추세다.

◇ 무라카미 류의 소설 '지구상의 마지막 가족'에도 등장하지만 일본에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히키코모리' 역시 자폐의 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수년, 또는 십수년간 자기 방에서 한 발짝도 바깥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폐쇄족들이 수천 명 이상 될 것으로 추산돼 충격을 준 바 있다.

◇ 자기 안에 꼭꼭 숨은 사람들을 바깥으로 나오게 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자신의 성(城) 안에서만 평화롭고 행복한 그들에겐 바깥세계란 엄청난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자폐증은 치료가 쉽지 않지만 절망적이지도 않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템플 그랜딘 교수는 가축도구 디자인과 가축행동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전문가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랜딘은 자폐인이었다. 그것도 의사로부터 보호 시설에서 평생을 살 것이라고 진단받았던…. 가족의 사랑과 세상을 향한 그녀의 도전이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 배형진 군에게서 시작된 감동의 물결은 지금도 계속된다. 지난달엔 역시 자폐아 고교생인 청주의 황석일 군이 7박 8일간의 '인라인 국토대장정'에 도전하더니 이달 6일엔 부산의 자폐아 고교생 김진호 군이 체코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뒤에서 함께 뛰고 땀 흘리는 부모들이 있다는 것. '해내겠다는 의지 앞에 불가능은 없다'는 사실을 이들에게서 다시 보게 된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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