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영 감독. 생소한 이름이지만 오랜 기간 한국축구를 사랑한 마니아라면 이 이름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을 4강에 올려놓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서 얻은 별명이다. 히딩크 감독이 이 별명을 얻은 과정을 보면 이러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 오렌지 군단은 차범근 감독의 한국 대표팀을 초토화시키며 5대0 대승을 거둔다. 이 경기 여파로 차 감독은 마지막 벨기에전을 앞두고 도중하차했다. 이때 히딩크 감독은 한국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둔 2001년 1월 한국국가대표팀을 맡게 됐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한국국가대표팀은 그해 5월30일 대구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 컵 예선에서 프랑스에 0대5로 대패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채 못된 8월16일 유럽원정 중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다시 0대5로 침몰했다. 이때부터 히딩크 감독은 오대영(5대0) 감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당시 언론 보도의 내용을 보자. '히딩크 한국축구에 열정 없다' '실망만 안긴 히딩크의 실험' '한국축구 틀은 언제 잡히나' 등등. 물론 참패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분명 퇴진 압력이 다분했다. 또 당시 최고의 스트라이커라고 불리던 이동국, 김도훈 등을 대표팀에서 탈락시키고 박지성, 송종국, 김남일, 최진철 등 국민들에게 다소 생소한 선수들을 중용한 데 대한 비판도 포함돼 있었다.
결과론이지만 그때마다 히딩크 감독은 자신만만함을 보여주었다. '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 6월까지 100%의 팀을 만들기 위해 겪어야하는 과정이며 중책을 맡겼으면 지켜봐달라', '선수들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며 언론과 팬들의 비판에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속이야 시커멓게 타들어갔겠지만.
결과는? 월드컵 4강이라는 기적 같은 성적을 이뤄냈다. 개인적으로는 4강이라는 성적보다는 '축구'를 매개로 온 국민을 한마음으로 묶어 열광케 하는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들어 낸 것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그 정점에 국민들이 있었고, 선수들이 있었고, 오대영 감독이 있었다.
요즘 축구대표팀이 다시 도마에 올라있다. 엄밀히 말하면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의 후임을 결정하는 문제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는 2006년 독일 월드컵(6월9일~7월9일)을 불과 9개월여 앞두고 경질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경기때마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본프레레에 대해 아무런 대책없이 '후임 감독을 선정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며 꼬리를 빼던 협회가 결국 언론과 팬들의 압력에 못이겨 본프레레를 하차시키고 만 것이다. '감독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이미 터져버린 물꼬를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특별한 색깔도 보여주지 못한데다 성적도 부진했던 본프레레 감독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특히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을 책망했던 그의 태도를 보면 이미 본프레레 감독은 그 자격을 상실했다.
이제 본프레레는 갔다. 그러나 우리는 남았다. 빠른 시간내에 새 감독을 찾아 흩어진 팀워크를 추슬러야 한다. 불과 9개월 뒤엔 2002년 초여름의 뜨거움을 기억하며 TV를 통해 태극전사들이 싸우는 모습을 응원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뽑기전에는 철저히 검증해봐야겠지만 누가 오던 믿고,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다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우리나라 축구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감독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우리 색깔 축구로 세계무대에 서는 날을 기대하고 싶다. 그래서 몇 경기의 결과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것이 월드컵 본선이라고 할지라도. 2010년, 2014년, 2018년…월드컵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정지화 스포츠생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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