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가을 어귀에 들어서면서 찾아오는 것일까? 아마 무더위 이후에 갑자기 찾아온 서늘함에 적응하지 못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해주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가을이 되면 사랑빼곤 할 이야기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멜로 영화가 밀물듯이 쏟아지고 결혼식도 성황을 이룬다. 그래서 바로 곁에서 만날 수 있는 이웃의 사랑의 엿봤다.
◆20대의 사랑-장성일(28)·조지현(25·여) 커플
1820일. 꽤나 긴 사귐의 시간에서 오는 믿음 때문일까. 이들은 그저 친구처럼 편안해 보인다. 장-조 커플은 오랜만에 모교인 대구가톨릭대학교 캠퍼스 잔디를 밟았다. 변함없는 캠퍼스 커플로 주위의 시샘도 많이 받았을 터. "주위 친구들이 언제 깨지나 내기까지 했다니까요"라며 웃는다.
이들의 만남은 우연찮게 여자 후배가 한몫했다. 2000년 3월 막 복학한 장씨가 여자 후배 자취방을 갔다 조씨를 처음으로 본 것. 장씨는 "당시 후배 친구인 조씨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얼굴에서 광채가 났어요"라고 기억한다. 한마디로 '필'이 꽂힌 것이다. 하지만 시작은 용감한 조씨로부터 시작됐다. 조씨 입에서 먼저 사귀자는 얘기가 나온 것.
이들에게는 막상 둘만의 추억보다 친구들과 더불어 보낸 시간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울산에 갔을 때 비바람에 텐트에서 밤새 안절부절 못하던 일, 안면도에서의 갯벌체험, 버스를 타고 무작정 경주 양동마을에 내린 기억…. 숱한 날들을 하나씩 꺼집어 낼 때마다 함께 했음을 즐거워했다.
"이곳 인문대 길은 가을에 은행나무들이 무척 이뻐요. 학교 전체가 아담하고 조경이 깨끗하게 되어 있어 데이트 코스로 강추예요." 장-조 커플은 모교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내년에 결혼을 앞둔 이들의 모습은 깨끗하게 맑았다.
◆40대의 사랑-이승호(47)·박명희(42·여) 부부
10년 만의 외출이었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둘만의 시간을 가져본 것이 아득하다. 중년의 로맨스가 그렇게 쑥스러운 지 이씨 부부는 얼굴을 붉히기 일쑤다. 지금은 사라진 삼덕다방에서 밀어를 속삭이던 이들의 데이트는 요즘 세대에게는 어찌보면 건조하기 그지 없다. "20년 전쯤 대학 4학년 때 형이 운영하던 인쇄소에 들렀다 직원으로 일하던 아내를 처음 만났죠."
어느날 이씨는 바바리코트를 사러 가자며 접근해 데이트를 성공시켰다. 이씨의 직장 문제로 만났다 헤어졌다를 거듭했던 이들 부부는 어느새 5년간의 연애로 이어졌다.
하지만 결혼이 쉽지만은 않았다. 부인 박씨의 집에서 반대가 심했기 때문. 이씨는 "예전엔 다 딸들 가진 집안에서 반대가 많았죠"라며 조금은 억울한 표정. 하지만 반대할수록 사랑은 더하는 법. 이씨는 박씨 집 담을 타넘어갈 만큼 애절했다.
"옛날 연애할 때만 해도 대구에 가볼 만한 곳이 변변찮았어요. 수성못이나 가창, 달성공원 등이 다였죠." 이씨는 "과거에는 나무가 우거지고 가을엔 낙엽이 떨어져서 청춘남녀에겐 첫 번째 데이트 장소였죠. 지금은 깨끗하게 정돈도 잘 되어있고 산책하기 좋네요"라고 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못해도 이씨 부부는 환한 웃음으로 변치 않는 서로의 애정을 전했다.
◆60대의 사랑-권태옥(67)·김동을(70·여) 부부
1959년 12월19일. 권씨는 아직도 결혼 날짜를 정확히 기억한다. 그러기에 노인대학에서도 잉꼬부부라는 소문이 자자한 사이다. 하지만 권씨 부부의 만남은 요즘과는 무척 거리가 있다. 딱 격세지감이란 말이 들어맞는다. 당시에만 해도 부모끼리 오케이하면 결혼을 해야 하던 시절. 결혼하기에 앞서 서로 얼굴도 못봤단다. 고등학생이던 권씨는 호기심에 김씨를 한번 보려고 작정했다 삼촌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도 김씨는 "남편을 한번도 못 봤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설레고 기뻤어요"라고 회상한다. 김씨는 지금도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남편과 다시 결혼하고 싶어요"라며 일편단심이다. 그만큼 김씨는 남편을 잘 챙기는 현모양처였다. 처음엔 별 느낌이 없었다는 권씨도 김씨가 시부모 잘 모시고 집안 일도 똑 부러지게 하는 걸 보고 정이 갔다고.
권씨 부부가 결혼할 당시는 정말 기억하기도 싫을 만큼 팍팍한 때였다. 당연히 데이트는 꿈도 못 꾸었다. 그저 가끔씩 손잡고 시장 구경을 가거나 경조사를 쫓아다니기에 전부. 권씨 부부는 이날 3번째로 대구수목원을 찾았다. "옛날에 이곳 선인장 한 포기를 갖고 온 적이 있죠. 그 때만 해도 도로 포장도 안되어있고 허름했는데…." 이제 권씨 부부가 바라는 것은 딱 한가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렇게 10년만 같이 살았으면 해요."
글·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사진 (위)대구수목원을 찾아 모처럼 오붓한 산책을 하는 권태옥씨 부부. (가운데)수성못 한 야외카페에서 다정한 모습을 연출한 이승호씨 부부. (아래)모교인 대구가톨릭대학교 팔각정 앞에서 조금은 닭살돋는 포즈를 취한 장성일씨 커플. 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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