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연한 표현으로 실익 얻어야

학교 급식에 우리 농산물을 쓰도록 한 지방의회 조례가 국내산과 수입산의 동등한 경쟁 관계를 명시한 GATT(관세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위반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세계무역기구 체제 속에서 지구촌 각국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세계화의 현실을 실감나게 하는 판결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세계화 환경이 그물처럼 짜 놓은 각종 규정과 조약 등 국제 법 제도와 우리 일상의 접목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대법원 판결에 반발하는 시민 단체와 학부모 단체 등의 주장은 물론 정당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농산물을 먹이고 우리 농업의 기반을 지켜 내려는 움직임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 체제의 현실을 무시하고서는 우리 농산물의 보호와 우리 아이들의 건강 챙기기는 쉽지 않다. 정부가 학교 급식법 개정과 조례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측에 '우리 농산물'이란 용어 대신 '우수 농산물'로 표현을 바꿔 쓰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학교 급식법 개정 작업도 이런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꼭 우리 농산물이란 표현으로 무역 반발을 사는 대신 유연한 표현으로 실익을 얻어야 한다. 우리 농산물 사용을 강제하기보다는 우회적 표현과 세계무역기구 조항이 제약하지 않는 방법으로 우리 농산물의 안정적인 소비를 유도해야 한다. 무역기구 협정을 준수하면서도 우리 농산물을 보호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미 지구촌은 한 울타리에 들어와 있다. 동일한 법에 의한 자유 경쟁이 요구되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공산품 수출로 국가 경제를 이끌어가는 형편 아닌가. 우리의 생존과 성장은 세계무역기구 체제의 확고함 속에서 보장된다. 우리 것을 지키고 키워야 한다며 명분에 집착하다가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우리 농산물에 대한 안정적인 판매망 구축과 학교 급식의 질적 향상에 대한 범사회적 대책이 절실하다.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려는 학부모들이 있기에 당장 학교 급식에서 우리 농산물이 사라지지는 않을 터이다. 그러나 가격 경쟁에서 월등히 앞선 수입 농산물의 등장은 자명하다. 수입 농산물의 검역은 더 이상 하찮은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희생되는 우리 농업에 대한 사회적 보호망도 시급하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