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위대한 대화

'어떠한 불이익도 받음이 없이 자신이 사유한 대로, 그리고 논증이 이끄는 대로 말한다는 것은 문명의 발달을 예고한다.'이는 존 듀이와 더불어 미국이 낳은 위대한 교육사상가로, 전 생애와 저작을'대화의 문명'을 위해 바친 로버트 허친스(Robert Hutchins)의 말이다.

허친스는 위대한 공동체를 염원하였고 이러한 공동체를 위한 방법으로'위대한 대화'를 제안하였다. 그는 저서 '위대한 대화'에서'사상의 교환'을 인류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통로라고 했고 대화가 아닌 일방적 지시와 명령만 있는 곳에서는 이러한 사상의 교환과 탐구는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또한 교육의 개념을 대화로 이해하여'교육은 일종의 계속적인 대화이다. 그리고 대화는 본질적으로 상이한 관점들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의 단절은 교육을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그것은 교제의 단절을 의미하며 사람들을 모래알처럼 흩어지게 한다고 했다. 반면에 대화로서의 교육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고 관념의 모험을 감행하고 관심의 폭을 넓게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허친스의 교육관도 듀이를 위시하여 변화, 경험, 대중민주주의를 강조한 당시의 진보주의 성향의 교육사상가에 의해 전통, 이성, 지적 교육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교육의 진정한 목표이면서 동시에 교육의 방법으로 제시한'위대한 대화'가 더없이 위대해 보이는 것은 우리가 처한 사회나 교육 현실이 너무도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틀 속에서 일방적인 지시와 명령만 강요하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나 다양한 사회공동체가 보다 바람직하고 미래지향적인 본래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사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성원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공동생활 조직의 발전은 물론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동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회 각 조직에서는 구성원 간에 다양한 의사소통 기구를 의무적으로 두고 있다. 학교에서도 의사소통을 위하여 학생회니 교무협의회니 교사'학생협의회니 혹은 학교운영위원회니 하는 등등의 의사소통의 장이 의무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현실에선 아직도 위대한 대화로서의 의사소통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허친스는 위대한 대화란 인생의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거나 위인들이 만든 관념들을 숙고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고 그 필요성에 따라 학문에 대한 이해와 교양교육과 같은 방법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현실에선 안타깝게도 학생들의 두발 문제와 같은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조차 학교 내 구성원들 간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법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리고 두발 규제는 인권에 위배된다는 법적 판결이 나온 후에도 학교에서는 여전히 이 문제에 관한 대화의 빈곤과 단절로 일부 교사와 학생들 사이의 갈등은 물론 이로 인한 교육적 불신을 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허친스가 강조한 바와 같이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어느 누구의 생각에 동의하고 따르는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동의는 하나의 목표이며 대화는 그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의만을 강요하거나 중요시하면 대화는 불가능하며 진정한 목표 성취 또한 있을 수 없다. 만약 학교장이나 교감 혹은 교사 등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성원의 일부가 의사소통의 과정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바에 대한 동조나 동의만을 학생들이나 교사들에게 강요하거나 중요시한다면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며 필연적으로 진정한 교육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교육 현실에선 요즈음 우리 교육계에 새롭게 그 필요성이 부각되는 논술이니 구술이니 하는 보다 고차원적인 의사소통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사실상 그 교육적 목표를 성취하기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논술이란 어떤 명제에 대해 로고스를 요소로 하여 자유롭게 논의하고 음미하며 자신의 입장을 말하는 것이며 그 궁극적 의의는 바로 위대한 대화로서의 의사소통을 통하여 인류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순희 동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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