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밤차를 타고 오는 당신을 기다리다

새벽차를 타고 떠나는 나

밤차를 타고 뜬눈으로 와 보면

새벽차를 타고 떠나버린 당신

다시 밤차를 타고 올 당신을 기다리다

다시 새벽차를 타고 떠나는 나.

김연대(1941~ ) '인생'

상사화라는 꽃을 아시는지요? 무성했던 잎이 다 진 후에야 꽃이 피기 때문에,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도 잎을 만날 수 없어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지녔다는 꽃….

이 시에서 시인은 인생을 그런 상사화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밤차를 타고 오는 당신을 기다리다가 아쉽게도 나는 새벽차를 타고 떠나고, 내가 밤차를 타고 뜬눈으로 달려와 보면 당신은 새벽차로 떠납니다. 그래서 다시 밤차를 타고 올 당신을 기다리지만 역시 새벽차를 타고 떠나가야 하는 엇갈림이 인생이라는 것이지요. 이 시는 동어반복의 매우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밤차가 환기하는 먼길의 피곤함과 새벽차의 쫓기는 불안감의 교차가 시적 긴장을 구축하면서 인생의 깊은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만남이 아니라 엇갈림을 통해서 마치 상사화의 잎과 꽃처럼 서로를 더욱 그립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닐는지요?

이진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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