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자살

목숨을 끊고자 벼랑 끝에 선 남자에게 천사가 나타났다. 천사는 서로 다른 두 장면을 보여준다. 죽음을 선택한 뒤 펼쳐지는 장면에서 남자와 이런저런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모두 슬픔에 잠긴다. 남자의 자살이 던져 준 충격은 그들의 생활을 어둡고도 혼란스럽게 한다. 죽음의 유혹을 견뎌낸 뒤 펼쳐지는 장면은 평화롭다. 부족한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행복과 웃음을 찾아 간다. 관계와 생명의 소중함을 보여 준, 오래 전의 영화 장면이다.

◇ 지난해 우리나라 자살자가 1만3천여 명으로 약 39분마다 1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연령별로는 60대가 가장 많다. 20대 사망자의 원인으로는 자살이 가장 높다. 불투명한 미래가 젊은층의 자살을 부르고 외로움과 우울증이 노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가족 부양의 의무를 지고 있는 남자는 여자의 2.5배였다. 드러난 자살 동기로는 염세 비관, 병고, 치정과 실연, 빈곤, 가정 불화, 정신 이상 순이었다.

◇ 극한 투쟁의 상징이던 분신 자살도 더 이상 충격적이지 않게 됐다. 달려오는 지하철에 몸을 던지는 사람도 늘어나 지하철은 자살철이라는 악명을 얻기도 했다. 자살 폭탄 테러는 엄청난 파괴력으로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한다. 톱스타급 연예인, 재벌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도 자살 대열에 합류했다. 인터넷에서 만난 젊은 남녀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이 목숨을 끊기도 한다.

◇ 지난 10일 제2회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보건복지부와 한국자살예방협회는 생명 지키기 7대 선언을 채택하고, 어떤 이유로도 자살은 미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개인은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구해야 하며, 정부도 생명 존중 사회 구현을 위한 정책을 최우선으로 시행하라고 선언했다. 한 종교 지도자는 "지금은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로 만들 시간"이라고 호소했다.

◇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나 행태는 제각각이다. 그러나 모든 유형의 자살 근저에는 고립감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와 주변으로부터 떠밀려 팽개쳐졌다는 외로움이 모진 선택을 하게 한다. 그래서 같은 불치병이라도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자살을 고민한다고 한다. 내 가족, 내 이웃을 자살로 내몰면서 건강한 사회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개인과 사회의 관심과 애정이 자살로부터 탈출하게 한다.

서영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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