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예술과 선동

연극 영화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어서 많은 사람에게 와 닿는다. 예술가의 개인적인 추구가 보편적인 인간성의 진실에 도달하여 생생한 활기로 빛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생의 의미와 감동으로 깨어나게 하는 반향을 일으킨다. 소재와 표현, 주제에 대한 예술가의 자유가 제약 없이 보장돼야 하는 것은 관습과 일상의 벽을 뛰어넘어서 창의적으로 탐색되고 구현되어야할 진실 때문이다. 허구의 스토리나 장면을 만들어 내는 것도 오직 이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진지한 예술가는 진실과 무관한 군더더기를 이 감동에 덧붙이지 않는다.

선동도 하나의 문화다. 선동에는 선동을 하는 주체와 선동에 이용되는 매체와 선동 당하는 대상이 있다. 정치적 의도를 가진 어떤 주체가 대중의 잠재된 에너지를 동원하기 위하여 대중의 보편적 심성에 와 닿는 욕구나 감정을 자극한다. 대중이 그 에너지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면 더욱 자극하여 충동적이 되게 만들어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선동의 주체들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터뜨리도록 방향을 유도한다.

선동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막가는 말과 극단적 논리로 대중의 억압된 분노와 적개심을 자극하여 동원하는 노골적인 선동이 제일 쉽다.

누구라도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을 주장하여 대중을 동원하고 주도권을 쥐면서 목표하는 정치적 의도를 슬쩍 끼워 넣는 선동 방식도 있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누구나 동의하는 움직임에 편승하고는 자기들만 친일을 청산할 의지를 가진 것처럼 독점하고 거기다가 정치적 이념 같은 걸 끼워 넣으면서, 이의를 제기하면 친일파라서 대의에 딴죽을 거는 것 정도로 호도해서 의도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또 다른 방식이 예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할리우드 대작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감동적이고 긍정적인 장면 틈틈이 유대인의 이미지를 슬쩍 끼워 넣곤 한다. 영화의 감동은 보편적인 인간성에서 오는 것인데 영화 제작을 하는 사람이 자기 민족의 이미지를 거기다 슬쩍 얹어 놓아 부지불식간에 그것이 그 민족의 특성인양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그 정도는 어떻게 보면 애교라고 봐 줄 수도 있겠으나, 특정 이념 집단을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것으로, 반대 세력을 사악한 것으로 느끼게 만들기 위해, 그 이념 자체에서 나오는 특징이 아닌 예술적 감동을 이용하는 것은 속임수에 가깝다. 그 속임수를 예술의 자유라고 주장하면 안 된다.

섬세한 기질의 예술가가 정치적 세력에 의지하고 싶거나 대중 속의 감동을 누리고 싶어서 자신의 예술품에 자기 예술의 본질과 상관없는 정치적 구호를 새겨 넣었거나, 정치적 의식을 가진 예술가가 예술과 정치를 혼합하였거나, 또는 예술적 소질을 가진 정치운동가가 예술적으로 자기 이념을 치장한 것일 수도 있다.

예술적 감동을 창조하거나 감상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그 사람이 인간적으로 훌륭하다거나 선택과 행위가 옳다는 것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나치 치하의 강제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의 생사를 가르는 선별작업을 하는 독일군 장교가, 연주 실력에 생사가 달린 수감자들로 구성된 악단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감동을 느꼈다. 실력 있는 예술가도 동시에 천박한 선동가일 수 있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고 머리를 비우는 것이 어찌 진정한 의식화일 수 있는가? 성경에서 예수는 깨어있으라 한다. 부처는 새벽의 고요함 속에 별빛처럼 성성히 깨어있으라 한다. 의식화는 말 그대로 의식이 깨어 있음으로써 내가 지금 느끼고 생각하고 반응하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온갖 선동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남의 의도에 조종당하지 않고, 내가 지금 왜 이것을 하는가 분명히 알고, 깨어있는 맘으로 스스로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이끄는 것이 선도자의 역할이다.

최태진 최태진신경정신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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