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 뛰어내리는 햇살은 어느 곳이나 고루 비춘다. 흐린 날 내리는 빗물도 만물을 두루 적신다. 사람도 깊고 넓은 도량(度量)을 지니면 햇살이나 빗물처럼 미운 사람과 고운 사람을 두루 비추고 적신다.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는 햇살과 빗물 같은 도량을 가져야 한다. 도량이 얕고 좁으면 세상은 어둡고 어지러워진다. 게다가 지도층을 비롯한 대다수 사람이 옳고 바른 말을 접고, 입신출세용 줄서기와 아부를 일삼는다면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 은(殷)나라 재상 이윤(伊尹)은 '천하가 혼란스러울 때 질서 잡는 사람은 하늘을 무서워하고 따를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임금 노릇을 못할 사람이 그 자리에 앉으면 하늘의 뜻을 어기는 짓'이라고도 했다.
이윤은 어느 날, 받들던 탕왕(湯王)이 죽자 아들 태갑(太甲)을 왕위에 오르게 했다. 하지만 망나니짓으로 나라를 어지럽혀 추방해 버렸다. 한동안 섭정하다가 태갑이 잘못을 뉘우치고 임금의 길을 걷겠다는 뜻을 굳혀 하늘의 뜻을 따르려 하자 다시 임금으로 모신 뒤 극진히 섬겼다고 한다.
장자(莊子)는 '덕은 천지에 두루 통한다(德者通於天地)'고 했다. 임금뿐 아니라 누구나 이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게 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거친 세상이 부드러워지고, 가시밭길도 꽃길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윗자리 사람부터 먼저 그 미덕을 받들어 덕을 베풀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행여 윗사람부터 덕을 펼치기보다 권력 유지에 급급한 재주넘기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면 안 될 일이다. 도량이 좁고 얕으며, 패거리 짓기까지 일삼아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난 두 달여 동안 몰아치듯 '연정(聯政) 정국'을 이끌던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 전 외견상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았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의 회담 뒤 '당분간'이라는 전제 아래 일단 휴지기에 들어가는 듯했으나 혼란 부르기는 여전한 듯하다. 잠시 나라를 떠나 해외를 순방하고 돌아온 뒤의 행보는 더 궁금해지기도 한다.
지난 8일 멕시코'코스타리카'미국 순방 길에 오르기 직전, 수석'참모들에게 '대통령이 비행기 타고 나가니 앞으로 열흘은 나라가 조용할 것'이라고 한 말이 단순한 조크로 들리지는 않는 까닭은 '왜'일까. 특별기 안에서 기자단에게 '이번에는 가급적 큰 뉴스는 만들지 않겠다'고 한 말 역시 그렇다. 대통령도 자신의 언행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는 한 모양이나, 그런데도 또 무슨 '노림수'를 쓰는 것 같아 아리송할 따름이다.
아무튼, 대통령은 힘(권력)이 세상을 혼란으로 빠뜨리고, 덕이 안온하게 해준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공자(孔子)는 '패도(覇道)를 버리고 왕도(王道)'를, 노자(老子)는 '병(兵)을 버리고 덕치(德治)'를 권했다. 이들의 일깨움은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할 왕도라고 본다.
나라의 혼란 요인이 물론 최고 지도자를 비롯한 지도자들의 몫만은 아니다. 바르고 옳게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는 '개인 이기주의'집단 이기주의'가 수그러들 때, 비로소 세상은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
사마천(司馬遷)은 잘못돼가는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바른 말을 한 죄로 혹독한 옥살이를 하면서 '사기(史記)'를 썼다. 예부터 세상이 썩으면 죄 지은 사람들이 죄 없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몰았다. 그래서 임금의 비위나 맞추며 이득을 노리는 간신(奸臣)들이 부귀영화를 누리고, 목숨 걸고 옳고 바른 말을 서슴지 않은 간신(諫臣)들은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간신(諫臣)이 많아지고, 그들을 알아주는 세상이 돼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깊고 넓은 마음'은 듣기 싫은 말일수록 귀담아 듣는다. 자신을 돌이켜 살펴보기도 한다. 남이 욕을 퍼부어도 화내지 않고, 칭찬에 우쭐대지도 않는다. 안 그러면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되기 어렵다. 위로부터 도량과 덕이 깊고 넓으며, 하늘을 두려워하고 따를 줄 아는 세상은 아직도 '하늘인 백성'에게는 요원하기만 한 걸까.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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