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를 목전에 둔 고3 교실은 손만 대도 펑 하고 터져버릴 것처럼 긴장감이 넘쳐 보인다. 수능시험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데다 2학기 수시모집 원서를 쓰면서 입시에 대한 체감도가 한층 높아진 학생들의 모습은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내면 피로와 고통, 일종의 허무까지 뒤섞인 학생들의 비틀어진 정서가 금세 눈에 들어온다. 딱딱한 책걸상에서 한밤중까지 계속되는 수업, 책가방의 허용 부피를 몇 배나 넘어서는 참고서와 문제집,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모의고사는 휴식을 넘어 일탈의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시간이 갈수록, 결승점이 가까워질수록 증세는 더욱 심해진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원칙과 정도가 승리한다는 데 대한 확신이다. 동일한 조건에서는 성실함이 승부를 가른다는 데 대한 믿음만이 이를 억누를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공부도 기술'이라는 말은 대학입시에서 더욱 맞아 떨어진다. 얼마 전 치러진 수능 모의평가를 분석하니 역시 여기에 매달리는 수험생이 적잖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리 나형에 응시한 자연계 수험생들을 말한다.
수능시험 수리영역(수학)은 자연계 형인 수리 가형의 경우 수학Ⅰ과 수학Ⅱ가 필수고 미분과 적분·확률과 통계·이산수학 가운데 한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이에 비해 인문계 형인 수리 나형은 수학Ⅰ만 치르면 돼 학습 부담이 훨씬 적다. 문제는 수험생들이 자신의 계열에 관계없이 수리 가형과 나형 가운데 선택해서 응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을 공부하면서 수학Ⅱ에 문외한이고, 공대에 다니면서 미분 적분에 깜깜한 대학생이 나올 길을 원칙적으로 열어둔 것이다.
대학들은 한술 더 뜬다. 자연계열 학과 가운데 수리 가형 응시를 의무화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모집 정원 채우기가 급한 대학들은 의예과나 약학과 같이 경쟁력 있는 몇몇 학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과에 누구든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수리 가형에 가산점 또는 나형에 감산점을 주는 대학이 상당수라고 하지만 총점의 10% 이내이기 때문에 가·나형의 표준점수 차이나 실력 차이, 학습 부담 등을 고려하면 영향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공부 기술에 민감한 수험생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이번 모의평가에서 수리 응시자 가운데 가형 선택 비율은 불과 27%. 자연계열임을 알려주는 실질적 지표인 과학탐구 응시자가 39%인데 비하면 4만 명 이상이 기술을 쓴 셈이다.
덕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게 마련. 대부분 자연계 중위권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수리 나형 응시로 인해 자연계 중·하위권이나 인문계 중·상위권 수험생들은 표준점수나 백분위에서 적잖은 피해를 보게 됐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니 책임 질 사람은 없다. 제도의 허점을 찾아내 발 빠르게 활용하는 사람이 덕을 보는 우리 사회의 생존 법칙을 어려서부터 확실히 가르치고 있다며 으쓱해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대구 수험생들의 수리 가형 응시 비율이 30% 가까이 되는 것을 두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딱하다고 해야 할지.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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