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석 극장가 되돌아본 40년

예나 지금이나 추석 극장가는 붐빈다. 영화관이 개봉관과 재개봉관으로 나뉘어 있던 그때 그 시절, 서두르지 않으면 보고픈 영화를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기 일쑤였다. 블록버스터 영화라도 볼라치면 극장을 휘감아도는 줄에 일찌감치 합류해야만 했다. 2000년대 들어 복합관 시대가 열리면서 이 같은 풍경은 사실상 사라졌다.

여름이 할리우드 영화를 위한 계절이었다면 추석연휴는 주로 우리나라 영화를 위한 무대였다. 60, 70년대는 멜로와 사극이 단골메뉴였고 80년대는 성인물, 90년대는 외화가 차지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코믹물이 추석극장가를 누비고 있다.

1960년대 초에는 대작임을 표방한 사극들이 많았다. '방화는 대작 붐'이라는 당시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 관람료가 70원 안팎이던 시절 '진시황제와 만리장성' '칠공주' 등 제작비 1천만 원을 넘긴 대형 사극들이 내걸렸다. 이 가운데 압권은 '총제작비 2천500만 원, 엑스트라 10만 명 동원, 말 300필 공수' 등을 선전하던 '화랑도'였다.

60년대 후반에는 문희, 남정임, 윤정희 등 여배우 트로이카가 주름을 잡았다. 69년 9월 한달 동안 신문 광고면에 실린 한국영화 15편 중 12편이 이들 세 배우가 등장했을 정도. 68년 9월 개봉한 문희 주연의 '미워도 다시한번'이 36만2천 명이라는 당시로는 기록적인 관객을 동원했다. '여자로 태어나서'(윤정희·신성일), '피도 눈물도 없다'(문희·김진규), '마지막 왼손잡이'(남정임·김희라) 등 추석 한국영화는 멜로 위주였다.

1970년대 초에는 ''미워도 다시한번-대완결편', '성웅 이순신'등 멜로와 사극물이 60년대의 뒤를 이었다. 그러나 관객이 10만 명을 겨우 넘는 등 별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영화계는 유신을 앞둔 '퇴폐풍조 단속' 조치 발표 등 유신전후의 암울한 시대 분위기를 이유로 들고 있다. 반면 1972년 이소룡의 '정무문'(31만 명) 등이 이 시기에 개봉돼 깊은 인상을 남겼다.

70년대 후반은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 등 세 여배우들이 신(新)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1978년 추석에 개봉된 조해일의 신문연재 소설을 영화화한 장미희 주연의 '겨울여자'는 58만5775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워 70년대 최고의 영화가 됐다.

1980년대 들어서는 신군부 등장후 성인물의 시대가 열렸다. 초기에는 '빙점 81', '닥터 지바고'등 재상영작과 '어둠의 자식들', '만다라' 등이 추석 극장가에 내걸렸다. '차타레 부인의 사랑' 등도 이 시기에 개봉돼 뜨거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중반 들어서는 1985년 추석 에로사극 '어우동'의 '속곳 바람'이 추석 이후 3개월간이나 이어졌다. 서울 단성사에서만 4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을 정도. 이어 88올림픽을 앞두고 '뽕2', '변강쇠3', '이조춘화도' 등 에로물이 추석절마다 등장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88년 추석에 개봉한 '매춘'(43만2천 명)만이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1990년대는 추석 극장가를 외화에 내준 시대였다. 1990년 초여름 개봉한 '장군의 아들'이 추석까지 이어갔으나 '물위를 걷는 여자',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꿈', '태백산맥' 등 추석에 맞춰 개봉된 영화들이 분루를 삼켰다. 반면 '트루 라이즈', '칼라 오브 나이트', '라이온 킹', '스피드' 등 여름에 개봉됐거나 추석에 맞춘 외화들은 성공했다. 한국영화로 흥행 성공작은 97년 추석 개봉된 장윤현 감독의 '접속'으로 67만5천 명을 동원했다.

2000년대 추석 연휴의 왕좌는 코믹물이 차지했다. 2001년 '조폭마누라'에 이어 2002년 '가문의 영광', 2003년 '오 브라더스', 2004년 '귀신이 산다'에 이르기까지 해마다 추석 연휴에는 코믹물이 내걸렸고 흥행도 성공했다. 올해에는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 가 내걸려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창룡기자 jc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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