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와 미국 등 세계 사이의 한 '엇'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이 '엇'에 대답하는 한민족 나름의 한 '엇박'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희승 국어 대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다른 말의 앞에 붙어서 '비뚜로', '어긋나게', '서로 걸쳐서', '서로 비켜서', '조금'의 뜻을 나타내는 말".
'엇박'은 다 알다시피 '혼돈 박'이니 대개 3박자와 2박자 혹은 4박자의 혼합이다.
이 '엇', '엇박'이 가장 집약적으로 또 가장 미학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우리 음악에서 '엇모리', '엇모리장단'이다.
이 방면 전문가인 이보형(李補亨) 선생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 보자. 판소리, 산조, 무가, 민요에 쓰이는 장단의 하나로 매우 빠른 3박자와 2박자가 '3+2+3+2'로 짜인 10/8박자의 장단으로 엇모리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엇갈려 나아가며 몰아가는 장단이란 뜻이고 10박자의 장단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10박자의 장단이나 3박자로 된 긴 박자와 그 박자로 된 짧은 박자가 섞인 절름거리는 4박자로 느껴진다. 매우 빠른 10박자로 꼽을 때 음악이 맺는 경우에 제8박자에서 북의 온각 자리나 장구의 변죽을 크고 강하게 친다고 설명한다. 이 장단의 음악은 절름거리는 느낌을 주며 생동하는 리듬감이 있다. 이상이다.
그런데 '엇'의 한자풀이는 혹시 없을까? 있다. '(엇)'이다.
고시조집에 '농(弄)', '엇농(엇弄)' 따위로 적혀 있는 '엇시조'의 그 '엇'이다.
'농'은 정조(正凋)에 대한 '변조(變凋)'를 뜻하고 '엇'은 이두식 표기로 '얻'의 한자화다.
'엇가다', '얼치기'의 뜻이므로 어쩌면 시도, 학문도 아닌 양자 사이에서 '엇가는 얼치기 형님짓'을 하는 나의 '엇공부'의 참뜻이기도 하다.
'엇시조'에 관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망월은 눈속에 찬데'는 3.6.3.5조로서 정격 평시조에서 약간의 변조가 나타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규격화한 율조여서 볼 때는 신선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 엇시조다.
엇시조는 정격을 지키려는 이른바 사대부시조와 몌별(袂別)한 가객(歌客)이나 기루(妓樓)의 것이었음이 밝혀지고 있으니 '엇'의 미학적 특징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혼돈적 질서'는 '생명성'이다.
한국 현대 대중문화 역사에 바로 이 '엇'이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리는 일대 사건으로 나타났으니 그것은 2002년 월드컵 축구 때의 붉은 악마들이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대~한'의 3박자와 '민국'의 2박자의 혼합이니 바로 '엇박'이요 다름 아닌 '혼돈의 질서'다. 뒤에 오는 장단인 '짝짝짝 짝짝'도 이와 똑같다. 문화적 원형이다.
그리고 그 시뻘건 도깨비 문양. 바로 4천500년 전 동이(東夷)족 추장 치우(蚩尤)다.
치우는 4천500여 년 전 북방계 유목문명을 청산하고 남방계 농경문명을 유일문명으로 세우고자 했던 중국 화하(華夏)족의 추장 황제(黃帝)에 대항해 유목과 농경의 결합을 위해 어로, 채취, 수렵 등 각종 생산양식을 병합하는 부족연맹체의 복합문명을 건설하려고 했다. 또 선진 유럽이 유일도시 유목이동 문명으로 세계화하려는 때 그 유목과 함께 농경 정착문명으로 지역화를 융합하려는 제3세계와 우리 민족 등의 지역화 입장에 대해 예언적 의미를 가진 신화적 콘텐츠다.
유목·농경의 문명복합은 다른 말로는 '디지털·에코'로서 이 역시 '엇'이다. 역사적 기준이다. 그렇다면 700만 붉은 악마의 대파도의 세 번째 충격은 태극기다.
그 절반이 넘는 젊은 여성들과 어린이들, 청소년들이 태극기로 망토해 쓰고, 태극기로 치마해 입고, 태극기로 온갖 보디 페인팅을 하고 거리와 경기장을 내닫는 장관은 5만 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인류의 출현 이래 최대, 최고, 최초의 일대 '신체 철학', '몸 철학' 사건이다. 온 우주와 심층 무의식의 일대 철학을 몸 위에 그려댔으니 말이다.
한국 태극기는 중국과 같으면서도 엄청나게 다르다.
이것이 전 인류 눈앞에 나타났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한국 공산(共産) 사상사 최고 이론가인 알마아타의 '박일' 선생의 다음과 같은 말이 귓전을 울린다.
'인류의 철학사에 변증법을 넘어설 사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역(易)철학의 새로운 가능성이다.'
한국 역이 바로 그 새 가능성이니 2002년 6월, 700만의 몸 위에 칠해진 붉고 푸른 태극과 네 간방(間方)의 괘상은 변증법을 극복하는 다름 아닌 새 역(易)인 것이다. 철학적 담론이다. 이상이 붉은 악마의 인문학, 문(文), 사(史), 철(哲)이다.
우리의 새 사상 공부와 새 철학 창조는 붉은 악마가 붉은 악마 자신을 공부하는 것이니 바로 붉고 푸른 저 '엇'의 공부다.
세계현실의 이름은 '대혼돈(Big Chaos)'이다. 대혼돈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탁월하고 통합적인 새 과학뿐이다. 그러나 이 새 과학은 탁월하고 통합적인 새 인문학으로부터 새 담론의 촉매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바로 이 새 담론은 문학·예술 등의 탁월한 새 기준(paradigm)으로부터 촉발되어야 하고 또 그 새 기준은 신화와 종교적 상상력 등에서 나타나는 새 원형(archetype)에 의해 발화되어야 하는데 바로 그 새 삶과 새 세계의 새 담론, 새 기준과 새 원형이 유럽과 미국에는 없다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일고 있는 '이스트 터닝(East Turning)·동풍(東風)'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을 동아시아에서 발견하고자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는 그것이 있는가? 중국에는 그것이 있는가? 있다.
그러나 없다. 있지만 살아 있지 않고 죽어 있다. 산 채로 죽임당한 것이다.
수천 년, 수백 년, 수십 년을 내리 교활하고 능란한 관료 지식인들의 주류 통치철학에 의해 산 채로 봉인당한 것이다. 그러니 허로는 있는 듯하지만 실로는 없는 것이다.
왕조의 변혁 때마다 그 계기를 만들었던 무수한 이름 없는 농민 반란군들의 사상이 바로 그것들이었음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동아시아에 그것은 아예 없는 것인가?
아니다. 있다. 어디 있는가? 한국이다. 한국에는 그것이 없는 듯하지만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 그것은 도처에 있고 고금에 다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그것이 바로 누이 한민족, 여러 뭇 민초들의 생명학인 동학에 있다는 점이다. 동학 사상의 특징은 광활하면서도 간략한 데에 있다(吾道博而約). 즉 모든 이치가 부적과 주문 두 가지 안에 압축돼 있다.
동학 사상 안에 유럽과 전 세계의 과학이 타는 목마름으로 찾고 있는 '담론(discourse)'의 내용이, 그들이 찾고 있는 '기준(paradigm)'이 그리고 그들이 그리도 절실하게 찾고 또 찾아 헤매고 있는 '원형(archetype)'이 숨어 있다.
우리의 '엇공부'는 바로 이 세 가지로부터 시작하고 확장 반복하고, 반복 확장하여 여러 차원, 여러 종류들로 비약할 것이다.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는 현대 유럽의 최고 신비주의자다. 현대 녹색운동과 영성교육운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는 한 유언을 남겼다.
"인류문명의 대전환기에는 반드시 인류의 새 삶의 원형을 제시할 성배(聖杯)의 민족이 나오는 법이다. 그 민족은 본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도 깊은 영성을 지닌 뛰어난 민족으로 본래부터 세계에 대한 큰 이상을 가진 민족이다. 그러나 끊임없는 외국의 침략과 폭정으로 그 이상이 좌절되어 내상(內傷)이 깊어진 자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삶과 세계에 대한 그들 나름의 소명을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로마가 지배하던 지중해 문명 당시 그 성배의 민족은 이스라엘이었다. 지금 그때보다 엄청나게 거대한 인류 문명사 전체의 대전환이 오고 있는 이때 그 민족은 아마도 극동에 와 있는 듯하다. 그들을 찾아가 경배하고 힘써 도우라!"
이것을 나에게 전한 사람은 슈타이너의 일본인 제자 '다케하지 이와오'선생이다. 그리고 그 민족이 바로 한민족임을 가르쳐주었다. 다음에는 동학사상이 가진 문명사적 의미를 되살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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