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情)이지, 연애야.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가 새롭지."
"영화란 무엇입니까"란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열정이라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처럼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맛보게 하는 것, 그게 영화란다.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70). 74년 의정부의 극장을 인수하면서 충무로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무릎과 무릎사이' '장군의 아들' 등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화제작들을 만들어냈고, '춘향뎐' '취화선'으로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다.
이젠 책장 가득한 트로피들을 '음미'하면서 여유를 즐길 법도 한데, 가을 햇볕을 즐길 시간조차 부족하다. 현재 10월 크랭크 인을 목표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을 준비중. 또 최근엔 경기도 의정부에 멀티플렉스 THC 나인(9)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극장업에 진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백전노장의 영화를 향한, 끝 없는 사랑 이야기를 들어보자.
▲ 네버엔딩 러브 스토리 Ⅰ
1964년 태흥상공을 인수해 건설 군납업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 영화를 좋아하긴 했으나 평생 업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부도가 난 건물을 인수했는데, 그곳 중앙극장엔 파리가 날렸다. 경강 권역 배급업자 세 명이 중앙을 제외한 다른 극장에만 영화를 공급해온 것이다. 오기가 발동한 이대표는 시세보다 20%씩 비싼 가격으로 1년분 영화를 몽땅 사들였다. 몇달이 지나자 기존 배급업자들이 슬슬 화해 신청을 해왔고, 노회한 배급업자들을 제압한 그는 건설업을 접고 아예 영화에 전념했다.
스크린 인연이 처음 시작된 의정부에 세운 THC 나인은 그래서 여러모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멀티플렉스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일구는데 기여를 했다. 문화소외층을 극장가로 불러들였다"고 진단한 이대표는 "THC 나인이 문화공간이 부족한 경기도 북부지역에 대중문화의 명소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했다. 한국영화제작사가 운영하는 극장답게 '기쁜 우리 젊은 날' '태백산맥' 등 태흥영화사의 영화 40여편 중 주요 장면을 모아 대형스크린에 상영하는 등 특색있는 경영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을 계획이다.
▲ 네버엔딩 러브 스토리 Ⅱ
"제작에 손 안댔으면 배급업자로 편하게 살지 않았겠냐"는 이 대표는 "배급을 하다보니 좋은 영화를 직접 만들고 싶어지더라. 그 욕심 때문에 20여년간 마음 고생을 한 셈"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84년부터 현장을 쫓아다니기 시작한 이 대표는 "돈 들여 볼만한 영화를 만들자"는 원칙에 충실하려 노력해왔다. '어우동'의 제작비는 1억 8000만원. 당시 영화 두편을 만들고도 남을 돈을 투입해 제대로 '때깔'을 냈다.
제작자로서 이 대표는 '참견은 노, 사랑은 예스'다. 감독을 팍팍 밀어준다. 호탕한 성격에 거침없는 말투를 자랑하나, 유독 감독앞에선 시골 집 어머니처럼 따뜻하기만 하다. 언제나 현장을 지키지만 절대 큰소리를 안낸다. 스태프들이 안볼 때 조용히 감독에게 몇마디 건네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요즘 제작 스타일이 도통 마음에 안든다. "영화란 사랑이다. 배우나 스태프들이 감독을 전적으로 믿어야한다"고 일침을 가한 이대표는 "이거 저거 따지고 각박하기만 한 요즘 현장 풍토가 안타깝다. '천년학'을 통해 영화란 이렇게 만드는 것이라고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임권택 감독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 속에서 '천년학'을 준비하고 있는 그의 목소리엔 절로 힘이 실렸다. "'서편제'의 신화를 이을 국민영화가 태어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천년학'은 이청준의 단편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전라남도 해안가 마을 선학동을 배경으로 한 소리꾼 아버지와 눈먼 딸, 그녀의 이복 오빠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최근 '웰컴 투 동막골'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 2'를 관심있게 본 그는 "내가 80년대와 90년대엔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다"면서 크게 웃었다. "'실미도'가 1000만 관객 돌파를 앞뒀을 때 강우석 감독에게 축하전화를 했다. '왜 내가 먼저 해야할 일을 네가 했냐'고 농담을 건넸다"는 이대표는 '천년학'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스포츠조선 전상희 기자 no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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