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빨리 통일돼 춤 췄으면"…몽양 여운형의 딸 여원구씨

여원구(78)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 겸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범민련북측본부 부의장은 몽양 여운형(1886-1947)의 자녀 중 유일하게 생존한 친딸이다.

지난 13일 오후 평양 양각도국제호텔에서 2시간 동안 열린 '2005 남북여성통일행사' 남측 답례연회에 여 의장이 하늘색 한복을 입고 참가했다.

고령이어서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으나 짧은 시간 기자들의 질문에 막힘 없이 대답했다.

여 의장은 남북 여성을 한 자리에서 만난 소감이 어떤가를 묻자 "친형제 같고 통일의 광장에서 만난 기분"이라며 "빨리 통일이 돼 춤을 췄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국 통일을 위해 여성이 전진해야 한다"며 "여성의 임무가 크다"고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어 사촌조카 등 남측에 있는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빨리 통일을 위해 노력해달라"며 "남북의 발걸음을 맞추고 씩씩하게 나가야 하며 통일이 될 때까지 살자"고 말했다.

그는 "내가 일을 잘못해서 아직 통일이 안됐다"고도 했다.

연회에서 여 의장과 함께 대화한 참석자들은 "여 의장이 자신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말로 다 어떻게 하겠냐고 해 사연이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며 "아직도 서울 말씨를 쓰더라"고 전했다.

또한 아들 1명, 딸 2명에 손자손녀 6명을 두고 있는데 최근 자신의 손자가 '아리랑축전' 무용 공연에 참가한 것을 자랑했다고 덧붙였다.

여 의장은 1991년 평양에서 개최된 국제의원연맹 총회에서 자신의 언니 여연구를 처음 만난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과 자신의 20년 고교(배화여고) 후배인 한국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장 등과 이야기를 나눴다.

박 이사장과 한 여성위원장은 "여 의장이 휘문고 뒤쪽에 살았는데 휘문고가 그대로 있는지, 배화여교 교정의 호두나무가 아직 있는지를 물었다"며 "피아노 6대가 있던 교내 음악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여 의장이 1946년 아버지에 의해 언니와 함께 월북, 김일성 주석에게 맡겨진 일을 언급했다고 덧붙였다.

여 의장은 기자들에게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한 것은 강제결혼과 같고 일제에 대한 조선사람들의 투쟁은 반항적 투쟁인데, 미제에 대한 민족의 투쟁은 자주성의 투쟁"이라며 북측 입장을 강조한뒤 "특히 여성들이 힘을 합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에서 태어난 여 의장은 1946년부터 8년간 모스크바에서 유학한 뒤 1954년부터 김책공업종합대학 교원을 역임했으며 1991년부터 교육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일했다.

1998년부터 생전의 언니 여연구(1996년 사망)가 가졌던 현재의 직책을 이어가고 있다.

몽양은 그동안 좌파 또는 사회주의 계열이라는 이유로 독립유공자 서훈대상에서 제외돼오다 지난 3월 남한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2등급인 대통령장이 추서됐으나 친딸인 여 의장은 이를 거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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