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울릉도와 뉴올리언스

태풍 '나비'와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자연 재해의 무서움과 인간의 무력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 남부를 강타한 '카트리나' 피해액은 2천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미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다. 미국을 충격과 공포에 떨게 했던 9'11 테러의 최소 10배 규모다. '나비'가 울릉도 등 경북 동해안 지역에 끼친 피해액 역시 잠정 집계로도 1천억 원을 넘었다.

특히 '카트리나'로 인해 시가지 대부분이 물에 잠긴 뉴올리언스 사태는 우리에게 교훈을 남겼다. 자연 재해는 인간의 오만과 만용을 언제나 철저히 응징한다는 것이다. 뉴올리언스는 미시시피강과 폰차트레인 호수 사이에 위치한 도시로 상당 지역이 해수면보다 낮다. 그런데도 미 정부당국은 폰차트레인 호수 제방의 붕괴 가능성을 간과해 피해를 키웠다. 부시 정권은 카트리나 발생 후 늑장 대처로 집권이래 최악의 곤욕을 치르고 있다. 급기야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책임임을 자인하고 나섰지만, 다수의 희생자를 낸 흑인들의 분노가 쉬 식을 것 같지 않다.

각설하고 우리 문제를 돌아보자. 매년 태풍이 닥치지만 태풍 피해는 연례행사로 되풀이되고 있다. 울릉군 역시 2003년 '매미' 2004년 '송다'에 이어 올해 '나비'까지 3년 연속 태풍 피해를 당했다. '나비'로 인해 개항이래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울릉 주민들은 울릉도 기반 자체가 붕괴됐다고 하소연한다. 이에 따라 기반시설에 대한 항구 복구와 함께 일주도로 완전 개설, 사동 종합항 개발, 울릉 경비행장 건설 등 지역 숙원 사업 해결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카트리나' 피해에 대해 신속하고 '통 큰' 지원 결정을 내린 우리 정부가 울릉도를 비롯한 동해 남부 지역의 태풍 피해 지원에 대해서는 왠지 느긋하다. 각 지자체와 사회단체, 기업들은 울릉 주민들에게 연일 '따뜻한 손'을 내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고작 울릉도에 특별교부세 5억 원을 긴급 지원하고 이재민 위로금 7억5천200만 원을 추석 전에 조기 지급하는 것으로 생색을 내고 있다. 물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피해복구 규모를 확정할 경우 항구복구 자금을 추가 지원할 것이다.

미국에 대한 지원은 시원시원하게 처리하는 정부가 울릉도를 비롯한 동해 남부 수해 지역에 대한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미적거리는 게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 미국이 우리 기업의 주요 수출 대상 국가이고 한미관계 개선 효과를 고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재계에 '반강제 할당'까지 하면서 '부자 나라'에 3천만 달러(300억 원)란 거금을 굳이 지원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더욱이 우리는 쓰나미 피해를 당한 동남아 국가와 터키 지진피해 지원 때 '자린고비' 지원으로 국제사회로부터 눈총을 받았다. 쓰나미 피해복구 지원금은 당초 60만 달러로 정했다가 인색하다는 비판이 제기면서 5천만 달러로 최종 결정했다. 지난 1999년 터키 대지진 당시에도 우리 정부의 공식지원금은 7만 달러로, 최빈국인 방글라데시의 10만 달러보다 적었다. 더욱이 '카트리나' 지원금은 이미 동남아 쓰나미 구호자금 지원총액의 서너 배를 넘는다. 이런 마당에 전 세계에서 네 번째, 일본의 30배나 되는 돈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한국에 대한 시선이 고울 리 만무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서울지역 모 신문의 행태다. 지난 8일부터 '카트리나' 모금을 시작하면서도 '나비' 피해지역은 외면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도 '할당된' 모금액을 맞추기 위해 지난 5일부터 '카트리나' 모금에 나섰다. 울릉 주민보다 뉴올리언스 주민이 더 불쌍하다는 사해동포 정신이 놀랍다. 울릉 이재민 수백 가구는 추석이 코앞인데도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우리 속담은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고 가르친다. 소중한 은혜는 물에 새겨 금세 잊고, 버려야 할 원한을 돌에 새겨 두고두고 기억하는 세태를 경계하는 말이다. 울릉 주민들이 행여 정부나 적십자사에 대한 원한을 돌에 새기지 않을까 걱정된다.

조영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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