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또 다시 천신(薦新)을 하며

민족의 명절 한가위 연휴가 시작됐다. 비록 사흘밖에 되지 않는 짧은 연휴이지만 흩어진 가족들이 함께 모여 조상의 덕을 추모하며 제사를 지내고, 자기의 근본을 되짚고 이웃과 인심을 나누는 중요한 명절이다.

예부터 추석날 아침에 지내는 차례에는 햅쌀로 만든 메'떡'술 등과 오색 햇과일로 제수를 마련하는데 이를 '천신'(薦新)이라고 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철따라 새로 나는 물건을 신이나 조상에게 먼저 올리는 일'이 바로 천신이다. 제물로 올리는 '새로 난 것'은 늘 순수함과 깨끗함을 의미한다. 결국 천신은 샅된 것이 아니라 순수'순결한 것을 경건하게 드림으로써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는 행위이다. 물론 천신을 함에 있어 제물이라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제사 행위에 내포된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마음가짐으로 다시 맞는 추석이기에 한가위 명절은 늘 우리를 들뜨게 하고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한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가족과 친지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시절 또한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이기 때문에 항상 추석이 기다려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추석도 어려운 경제상황과 정치'사회 등 답답한 생활주변의 여건으로 우리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정치'경제상황이 복잡할수록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의 마음은 답답해지고 불만도 커지는게 인지상정.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옛 말이 틀리지 않다. 가족들이 모여앉아 서너순배의 술이 돌다보면 자연스레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불만들이 터져나오게 된다. 정치나 경제, 사회 등 세간의 이야기들로 대화의 초점이 맞춰지게 마련이다.

올 추석에는 아마도 노 대통령의 연정(聯政) 제안이나 북핵 6자회담, 금강산 여행'개성관광을 둘러싼 현대와 북한의 갈등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할 것 같다. 조금 눈을 바깥으로 돌리면 미국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나 일본 자민당의 총선 압승 등 다양한 뉴스들이 화제거리로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무엇보다 서민들의 관심거리인 경기 불황과 다락같이 오른 기름값을 빼놓을 수는 없을 듯하고, 친일인명록이나 맥아더 동상 철거를 둘러싼 찬반 갈등에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유치전을 두고 가족간 침 튀는 설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모두들 천신의 세시(歲時)임을 깨닫고 있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한 탓에 어둡고 무거운 마음을 추스르기란 쉽지 않다. 변화와 개혁에 기초한 정치'경제'사회 현안에 대한 사회 구성원간 대립각이 여전히 날카롭다.

하지만 이런 날카로운 대립각에서도 희망은 엿보인다. 세대간 편차는 여전하지만 과거 익숙했던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달라지려는 움직임이 2005년 한국 사회의 대세이기 때문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 때 억눌렸던 자유주의 정신이 만개하면서 투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선진사회, 억압이 아니라 대화와 합의, 조정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민주사회, 어두운 과거를 털고 새로운 가치의 사회…. 학자들은 2002년 대선 이후 달라지기 시작한 권력과 이념의 지형도가 현재 우리 사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접을 건 접어야 하는 전환의 기류다.

우리 사회의 저류에 흐르고 있는 국민 의식은 100년전 식민지 시대와 60년전 해방무렵, 20~30년전 군사정권 때와는 분명 다르다. 우리를 둘러싼 국내외 환경이 급격히 달라지고 바뀌듯이 이제는 새로운 이미지의 시대이자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시대이다. 전환의 시대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이번 추석에는 새로운 것으로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천신'하면서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고 밝은 미래로 향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한가위 둥근 달에 차곡차곡 쌓였으면 좋겠다.

서종철 문화부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