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초생활자 선물 '누군주고 난 왜 안줘'

"안 주는 게 낫다."

15일 오후 대구 모 구청 사회복지과에 70대 노인이 찾아와 구청 관계자에게 "추석이라고 겨우 라면 한 상자 던져주고 가면 끝이냐"고 호통을 쳤다. 담당과장이 나서서 사과했지만 이 노인은 "거지 취급받는 것 같아 오히려 더 화가 난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같은 날 김필순(가명·50·여)씨는 구청에서 "왜 더 잘 사는 사람은 1만 원 상당의 선물을 주고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들은 아무것도 없느냐"며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정했느냐"고 따졌다. 한 사회복지사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국민기초생활수급대상자라도 혜택을 받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설득해 간신히 돌려보냈다.

대구시내 각 구청이 일부 계층에게 준 '쥐꼬리만한' 추석 선물 때문에 연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매일 몇 명씩 구청을 찾아와 고함을 지르고, 항의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대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추석을 맞아 어려운 이웃 1만4천676명에게 1인당 1만 원 상당의 선물을 각 구청을 통해 나눠준 것이 발단. 국민기초생활 수급 대상자만 해도 3만5천여 가구에 달해 3명 중 1명꼴만 추석위문품을 받게 된 것. 특히 사회복지시설, 보훈대상자, 장애인 등에 우선적으로 위문품이 전달돼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는 사람은 훨씬 더 적다. 때문에 10만여 가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차상위계층은 아예 구청에서 주는 추석 선물은 꿈꿀 수도 없다.

그나마 매월 지급하는 최저생계비를 일주일 가량 앞당겨 지난 14일 입금시켜 준 것이 전부다.

달서구청 최상곤 사회복지과장은 "과거에는 국회의원이나 단체장 등이 외부에서 들어온 성금으로 선물을 나눠 줬지만 현재는 선거법 등으로 인해 불가능하다"며 "항의하는 분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해결책이 없다"고 했다.

이번 추석에 위문품을 받는 대상자는 동구가 2천879명으로 가장 많으며 달성군이 2천406명, 수성구 1천992명, 달서구 1천837명, 북구 1천781명 등의 순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예산이 부족해 모든 이웃을 돌보기 힘든 실정"이라며 "대기업, 단체 등에서 넉넉하게 돈을 맡겨온 것도 옛날 얘기가 됐다"고 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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