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40대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은 퇴임 후 1994년 자신이 뇌세포를 파괴하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는 것과 그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일몰에 이르는 여정을 시작했음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자신의 병이 심해지면 가족들이 힘든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정신적 고통은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 그가 타계한 2004년까지 10여 년간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된 채, 부인 낸시여사와 자녀의 극진한 수발을 받았다는 것 외에는 그의 병력이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 레이건의 업적이 치매로 얼룩지는 것을 막고자 했던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타계할 때까지 가족들의 고통이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래서 그의 딸이자 작가인 데이비스가 부녀 간의 사랑을 추억하는 회고록 제목도' 롱 굿바이(Long Goodbye)'였다. 우리말로 '길고 긴 안녕'정도로 바꿀 수 있겠는데 10여 년간 알츠하이머로 고생하는 아버지를 지켜봐야 했던 절절한 마음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하여 가슴이 저려온다.
이처럼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치매라는 병은 가족들에게 경제적 부담은 물론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가족애가 단절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쳐버린 가족들이 치매환자를 유기하거나 인륜을 저버리는 끔찍한 일마저도 발생한다. 의료복지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풍요로운 노후보다는 '품위있는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어느 연구소의 발표가 아니더라도 노인 치매환자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대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굳이 노인 치매환자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노인들이 처한 불우한 상황을 극명하게 말하고자 함이다. 그 혹독하던 60,70년대에 앞으로의 미래세대를 위해 그야말로 자신을 희생해야만 했던 노인들이 이제 와서는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고 국가와 사회로부터는 버림을 받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2000년에 이미 총인구 대비 노인인구가 7%를 초과함으로써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하였으며 2026년에는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가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이 현재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인구고령화추세가 진행되고 있고 그로 인해 치매나 중풍 같은 노인질환 문제가 심각한 지경임에도 노인들의 요양을 위한 전문시설이나 인력 등은 극히 미약하다. 조사에 의하면 국내노인의 8.3%인 36만여 명이 치매를 앓고 있으며 중풍환자도 매년 3만여 명이 이로 인해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핵가족화, 여성의 사회적 역할증가 등으로 인해 이미 가정에 의한 요양보호는 한계에 도달한 지 오래고 설사 중풍 혹은 치매병원과 같은 전문의료시설 등이 있다고 해도 그 비용이 최소 월 100만 원을 훨씬 상회하는 게 보통이어서 중산층이나 서민층의 노인과 가족이 이용하기에는 현실상 어렵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우리 사회의 노인에 대한 담론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다만, 다행히 최근에 보건복지부는 2010년부터 노인요양보험제도라는 제도를 도입하여 치매, 중풍 등 노인성 질환으로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노인에게 간병에서부터 재활까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물론 이 제도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난관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듯이 우선은 건강보험의 보장성확대가 이루어져야 하고 노인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공요양시설의 대대적인 확충과 보호인력도 체계적으로 양성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전제는 노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부담 혹은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 대신에 존엄하고도 아름다운 노년이라는 긍정적 인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 다음 노인과 그 가족들이 최소의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품위있는 노후생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노인문제는 단순히 빈곤계층만의 문제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로 확대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시몬 (시몬정신건강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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