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동북아 자치단체연합을 결성하면서 사무국은 2년마다 순회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순회사무국의 역할은 회의준비 정도였기 때문에 연합의 활성화를 위해 하루 빨리 상설사무국이 운영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치나 운영비 등 합의를 이루기 쉽지않은 문제들이 놓여 있었다. 나는 2000년 일본 효고현 총회 때 연합 창설을 주도했다는 점을 들어 사무국 유치를 제안했지만, 일본은 초대 의장에 이어 상설사무국까지 한국에 넘겨줄 수 없다고 생각한 듯 반대했다. 그래서 나는 2004년 총회를 목표로 차근차근 추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위해 '동북아 비즈니스촉진회의'를 경주에서 수차례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일부러 하바로프스크를 찾아가 주지사와 협의하기도 했다.
2004년 들어서면서 다소 조바심이 났다. 나의 임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듯한 일본의 전술에 말려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해 1월 실무협의차 흑룡강성으로 떠나는 경제통상실장에게 반드시 사무국 문제를 매듭짓고 오라고 지시했다. 며칠 뒤 그는 9월 총회에서 표결처리키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이번에도 일본 대표단은 방해를 했지만 우리 측의 끈질긴 설득과 중국'러시아의 도움으로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후문이었다.
경북의 상설사무국 유치는 거의 확정적이어서 수락연설까지 준비해 흑룡강성 하얼빈으로 갔다. 그런데 총회 개막 전날 일본이 상설사무국 연임을 1회로 제한하지 않으면 헌장 개정에 동의할 수 없다며 또 다시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실무회의 논의대로 상정하는 것이 원칙인 국제회의 관례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나로서도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경제통상실장과 담당 과장은 준비를 소홀히 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쓰겠다고 했다.
그렇게 애를 써놓고 멀리 타국까지 와서 사표라니…. 그들은 나에게 배수진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 또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초 합의대로 하지 않으면 한국대표단 전원을 철수시킨다고 해. 총회를 준비한 흑룡강성의 책임이 커." 나의 단호한 지시에 직원들은 연합 자체가 깨질 수 있다며 걱정했다. 하지만 나는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특성상 흑룡강성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고는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에 직원이 흥분된 목소리로 잠을 깨우며 협상이 타결되었다고 했다. 예상대로 밤새 흑룡강성 관계자들이 중재를 하느라 분주했던 모양이었다.
아침에 식당으로 내려가니 각국 대표들은 나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고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대한민국 경상북도에 상설사무국을 두기로 의결했다. 안중근 의사가 약 100년 전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쏘아올린 하얼빈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기구 사무국은 그렇게 유치되었다.
이의근 경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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