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분노의 역류

구조활동 종사자의 '스트레스 장애'

지난 2일 발생한 대구 목욕탕 폭발사고는 사상자가 53명이나 되는 대형 재해였다. 구조와 진화에 소방차 30여 대와 소방관 인력 400여 명이 투입됐다. 소방관들은 고가사다리 등 소방 장비를 이용해 건물 안의 사람들을 구조하고,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구조 활동을 했다. 마치 영화 장면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재해 구조자들의 정신건강은 안녕할까.

어린 브라이언은 소방수였던 아버지가 불과 싸우다 죽는 모습을 목격한다. 20년 후, 형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유능한 소방수로서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아버지의 모자를 쥐고 오열했던 동생 브라이언은 소방관의 길을 두고 방황한다. 결국 브라이언도 운명처럼 소방관의 길로 접어들지만, 형과 비교하여 자신의 자질에 회의를 느낀다. 견습생 시절 브라이언은 화재 현장에서 성과를 올리고 싶은 마음이 앞서, 사람을 구조한다는 것이 마네킹을 업고 나오는 해프닝을 빚기도 한다. 구조 활동 중에 이들은 기분이 고양되거나, 성과나 주위 칭찬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다.

형 스티븐은 유능하지만 만년 반장이다. 그의 매끄럽지 못한 인간 관계 때문이다. 부인과도 별거 중이며,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스티븐은 화재현장에서 어린 아이가 고립된 경우는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낸다. 자기 자식과의 강한 동일시의 감정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위험천만의 방화 살인이 연속되자, 긴장한 소방당국과 시에서는 방화 전문 형사를 투입시키고, 브라이언은 함께 사건을 맡게 된다. 걷잡을 수 없는 화재 진압 현장에서 동료가 순직하는 비극적인 결과가 빚어지자, 서로 간에 분노와 불신감이 생겨나고, 형제간의 갈등, 동료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실재로 구조자들은 만족스런 활동을 하지 못했다는 느낌으로 죄책감을 갖게 되고, 직업적 주체성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결국 일에 대한 의욕 저하로 이어지고, 사직하기도 한다. 이것은 사회적 손실로 이어지므로, 이들에 대한 정신 보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범인은 바로 불을 무서워하는 사람으로 밝혀지고, 방화범의 죽음으로 사건은 종결되고, 브라이언은 불과 당당히 맞서는 소방관으로 거듭난다.

큰 재해나 대형 사고의 구조 활동에 종사하는 소방대원이나 경찰관 등의 심리적 상태는 어떠할까. 직업상 이들은 비참한 상황을 잘 견디는 마음가짐을 당연히 가지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그들 자신도 약한 소리를 내는 것을 싫어하며, 혼자 고통을 참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정신적 충격이 크다는 것이 알려졌다. 오스트리아의 초원 화재 상황에서 활동했던 소방대원들 중 13%가 42개월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받았다고 한다.

이들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보이는 심리적 부담을 '비상사태 스트레스(critical incident stress)'라고 한다. 이것이 생기기 쉬운 상황은 손상이 심한 시체를 다루거나, 자기 자식과 비슷한 나이의 시체를 다루거나, 피해자가 아는 사람일 때, 동료가 활동 중에 부상을 당하거나 순직했을 때,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충분한 성과를 얻지 못할 때,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놓였을 때 등이다.

우리는 어려운 일에 처하면 이웃을 부르듯이 119를 불러댄다. 이들의 완벽한 업무 수행을 기대하는 만큼, 이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배려도 철저해야 할 것이다.

정신과전문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