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대구의 모 내과에 50대 남자 환자가 찾았다. 10년 전부터 당뇨병 등 성인병을 앓고 있는 이 환자는 그동안 대학병원을 비롯해 10여 곳의 병원을 전전했다. 내과 원장은 환자의 '닥터쇼핑'내력을 듣고, "대학병원 교수님도 성인병 전공으로 유명한 분인데 굳이 병원을 바꾸시는 이유가 뭡니까"라고 물었다.
"소문 듣고 찾아 갔는데 의사가 무뚝뚝한데다 궁금한 점에 대해서도 잘 대답해 주지 않아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 환자는 좋은 의사를 찾기 위해 헤매다가 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해 합병증까지 발생한 상태였다. 내과 원장은 "전문의라면 치료방법은 비슷하다"며 "의사를 믿지 못하면 병을 치료하기 힘들다"고 설득했다. 20여 분간 이어진 원장의 설득 끝에 그 환자는 지금까지 그 곳에서 꾸준히 치료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의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얘깃거리의 하나이다. 이런 일이 빚어지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의사와 환자의 관계 문제를 유발하는 주체는 3가지 중 하나이다. 의사나 환자, 아니면 양자 모두이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전에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 '라포'(rapport) 형성이다. 라포는 라틴어로 여기서는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를 말하며 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정신과 치료에 있어서는 그 어떤 약물보다 치료에 우선적이다. 그래서 어떤 의사들은 처방을 잘 따르지 않는 등 라포가 형성되지 않는 환자를 아예 다른 의사에게 보내는 경우가 있다. 환자 입장에서 이 같은 경우를 당하면 기분 나쁠 것이다. 하지만 병의 치료를 위해선 현명한 조치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그 의사에게서 좋은 치료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례. 며칠 전 40대 남자는 아들이 간질 약을 먹고 난 뒤 멍해지고 전신에 힘이 빠지는 것 같다며 의사에게 항의를 했다. 그 의사는 "처방할 때 말한 대로 약의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그 남자는 "그런 설명을 들은 적도 없고 의료사고이다"며 목소리를 높여 병원이 소란해졌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주변의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 몇 명이 소란의 전말을 알게 되자 그 남자를 데리고 나가 자신들이 경험한 간질 약의 불가피한 부작용에 대해 들려줬다. 핏대를 올리던 남자는 흥분을 가라앉힌 뒤 의사에게 사과를 하고 자리를 떴다고 한다.
국내 의료기관들은 최근 환자만족도를 의료행위의 질과 효율성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로 간주해 객관적 측정 기준 마련과 만족도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많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의료서비스에 대한 환자의 만족도가 높을수록 의사의 처방지시를 잘 이행하며, 그 결과 환자의 회복도 빠르다. 환자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의료기관 시설이용의 편리함과 청결함, 대기시간, 의료진과 환자의 관계(라포) 또는 의사소통, 그리고 환자와 의사의 성향 등을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의사와 환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환자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로 밝혀지고 있다. 특히 의사의 공감적 의사소통능력이 환자의 만족도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단다. 모든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바람직한 환자-의사 관계의 출발점은 바로 의사소통에 있다. 라포는 중요한 치료과정의 하나이면서 환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다.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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