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사고도시의 어른과 학생

'감삼'배자'싸리'월촌'월곡'와룡'서촌'신당'마산'대덕….'

지금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기억나기도 하고 전혀 생소하기도 한 20여 개의 대구의 못들이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며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수성못이나 과거보다 규모가 많이 줄어든 성당못과는 달리 대구의 많은 못들은 세월 흐름과 함께 없어지는 운명을 맞았다.

봄, 가을날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며 주변을 거닐기도 했고 건강을 위한 달리기 코스로도 애용됐을 법한, 삭막한 도심에서의 추억만들기 좋은 소재였던 못. 겨울이면 어린이들이 얼음지치기에 시간가는 줄 몰랐을 터이고 여름이면 모기나 벌레로 괴로움도 겪었으리라.

그러나 도심이 팽창하고 인구가 늘어나 개발이 이뤄지면서 분지인 대구에 유난히 많았다는 이들 못들은 하나 둘 아파트로 변했거나 새로 들어서는 학교나 공단부지 등으로 바뀌어 갔다. 이젠 옛날 지도나 책장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개발에 따른 어쩔수 없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심의 못들을 메워버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기만 했었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잖은 것 같다. 게다가 대구와 불(火)은 악연(惡緣)이라는 풍수지리적으로 회자되는 이야기도 있어 도심 못의 사라짐은 왠지 아쉽게 여기지는 듯하다.

이미 대구에서는 1995년 지하철 1호선 상인동 공사장 가스폭발 사고, 2003년 지하철 1호선 중앙역 화재와 같은 대형참사에다 지난달의 지하철 2호선 화재 및 이달 2일의 수성구 목욕탕 폭발 등 화재관련 대형 사고가 잇따랐던 터이다.

그런 탓인지 민간에서는 '불과의 악연을 끊고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대구의 옛 주산인 중구 봉산동의 연귀산에 불과 상극인 거북 모양의 거북바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분지 도시인 대구에 유난히 연못이나 못이 많았던 것도 불기운을 꺾기 위함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꺼냄은 이들 이야기의 신빙성 여부나 이런 이야기와 화재관련 대형재난 사고의 인과 관계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재난에서 나타나는 공무원들과 행정당국의 만족스럽지 못한 대처를 지적하기 위함이다.

대형 재난에 신속하게 그리고 제대로 대처하도록 지난 5월엔 대구시에 건설방재국이란 국(局)부서가 하나 더 늘었는데도 늘 그러했듯이 이번 목욕탕 폭발 사고 역시 사후 수습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오늘로 벌써 사고 발생 3주째를 맞았으나 피해자 및 유가족들에 대한 사후처리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아 행정당국의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구=사고도시'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대구시나 관할구청 등이 관련당국이 힘을 모아 사고수습을 먼저 하는 '선(先) 해결 후(後) 내부정리'라는 공조(共助)노력이 아쉽다. 불의의 사고를 미리 막지는 못하겠지만 사후 수습과정에서만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역시 대구는 다르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줄 만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행정당국이 기대했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이번 사고로 어머니를 잃거나 가족이 부상을 당한 학생을 돕기 위해 대구 동중학교 학생들이 지난 8일부터 22일까지 자발적으로 성금 모금운동을 벌여 동료 학생들에게 전달키로 했다는 소식이 '사고도시'에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을 한번 더 부끄럽게 하고 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한 끝에 내린 행동이 아니겠는가.

과거 대구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을 때 대만을 비롯한 외국에서는 사고원인과 사고수습 과정 등을 지켜보면서 대만 경우 지하철 근무자들에게 소형 소화기를 착용토록 하는 등 재빠르게 대처하며 타산지석으로 삼던 것과 비교하면 대구 당국의 행태는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대구는 지난해 1월 홍콩 지하철 화재사고 때 현지견학도 보냈고 사고도시 이미지를 벗고 안전도시로 거듭하기 위해 소방엑스포도 개최하는 등 남다른 노력을 해오고 있지 않는가.

마침 대구에서 다음달 혁신박람회가 열리고 오는 26일엔 오영교 행자부장관이 대구공무원들게 혁신특강을 하는 등 '혁신'을 노래하다시피하는 시점인 만큼 대구의 공무원들과 행정당국도 '혁신'을 해 보자.'얼마나 더 당해야 정신차리겠나…'하는 자조(自嘲)와 자괴(自愧)의 이야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말이다.

정인렬 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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