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폭탄주

폭탄주 자리에서는 현란한 제조술을 자랑하는 사람이 '병권'을 잡고 좌중을 좌지우지한다. 맥주에 양주잔을 빠뜨려 먹는 전통적인 폭탄주는 이미 구닥다리가 됐다. 회오리주'깔때기주'충성주'칙칙폭폭주'수류탄주'수소폭탄주'타이타닉주'선라이즈 선셋주 등 별의별 이름의 폭탄주가 종횡무진한다.

◇ 술자리 분위기가 예전보다 다소 관대해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폭탄주 자리에선 융단폭격식 음주 스타일이 지배적이다. 점잖게 와인으로 시작했다가도 폭탄주 생각에 온 몸이 근질거리는'꾼'들 때문에 이내 시끌벅적 질펀한 술자리로 변질돼 버린다.

◇ 한국에서 살며 '마틴씨, 한국이 그렇게도 좋아요?'라는 책을 펴낸 네덜란드 출신 마틴 메이어 씨는 한국인의 성격이 불 같다고 했다. 우리가 봐도 지난 날의 은근과 끈기는 실종돼 버렸고, 화끈하고 급하며 변덕스런 쪽으로 바뀌었다. 입안이 타는 듯한 폭탄주를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정근호 홍익대 교수의 한국인 음주 실태 보고서에 우리의 소주'위스키 등 '독한 술'소비가 세계 4위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그래선지 폭탄주로 인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우리 사회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22일 대구고'지검 국감을 마친 뒤 대구의 한 호텔 바에서 폭탄주를 마시다 여주인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폭언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또 한바탕 시끄럽다. 거두절미하고 국정감사 나온 의원이 피감기관 관계자들과 웬 술자리인가. 가뜩이나 주 의원은 검사 시절 여러 차례 주사(酒邪) 사건을 일으켰던 장본인 아닌가.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 세간에선 주 의원의 말을 못미더워 하는 눈치다. 지난해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 올 들어 곽성문 의원에 이어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 대구에서 또 이 같은 물의를 빚어 지역민들은 속상해 하고 있다.

◇ 국회의원 등 43명이 "폭탄주는 만들지도, 마시지도, 권하지도 않는다"는 취지로 '폭소(폭탄주 소탕)클럽'을 창립한 것이 바로 며칠 전이다. 특히 한자리 최고 27잔의 폭탄주 기록이 있다는 주성영 의원이 "어머니의 당부와, 맑고 깨끗한 정치를 위한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는 의미에서 가입했다"고 밝힌 뒤 "지금부터 내 인생에 폭탄주는 없다"고 선언, 묘한 감동을 주기까지 했었다. 결국, 우리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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