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잉어를 낚고 다시 놓아준 할아버지에게 용왕이 선물로 준 파란 구슬이란 게 있습니다.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들어준다는 구슬 말입니다.
그런데 강 건넛마을 마음씨 고약한 할머니가 몰래 바꿔치기 해서 구슬을 잃어버렸을 때, 고양이와 개가 강 건너 할머니집으로 가서 쥐를 시켜 구슬을 찾아옵니다. 헤엄을 칠 줄 아는 개의 등에 업혀 고양이는 파란 구슬을 입에 물고 강을 건너오지요. 개는 강을 헤엄쳐오다 고양이에게 묻습니다. 구슬을 잘 갖고 있냐고 말이에요. 고양이는 당연히 대답을 못하지요. 그런데도 자꾸만 개는 고양이에게 묻습니다. 은근히 도둑고양이라는 말로써 부아를 돋우면서 말입니다. 마침내 참지 못하고 '그래 내가 입에 꽉 물고 있다'라고 고양이가 소리치는 순간 아, 파란 구슬은 강물에 떨어져 버립니다.
구슬을 되찾기까지는 개와 고양이가 얼마나 사이 좋았던가요? 그런데 구슬을 갖고 강을 건너면서부터는 '개가 고양이에게 무엇을 묻는다'는 것과 '고양이가 개에게 대답을 한다'라는 것은 모순이 되어버립니다. 개가 대답을 듣는다는 것은, '파란 구슬을 갖고 있다'라고 듣든 '없다'라고 듣든, 그 순간 파란 구슬을 잃어버리거나 아예 파란 구슬이 없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말입니다. 대답을 듣지 못하면 파란 구슬이 없는 줄 알고 더 불안하고 애가 탑니다. 아무리 물어도 등 뒤에서 대답을 하지 못하면 강을 건너는 것을 포기하거나 더 화를 돋우도록 엉뚱한 행동도 하겠지요.
그런데 기실 아무 대답이 없다는 것은 파란 구슬을 입에 물고 있어서 대답을 안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시간의 강물 한가운데를 열심히 헤엄쳐 가는 개에게 이제는 되돌아 거슬러 가기에는 너무나 위험할 것 같아서 '파란 구슬이라는 건 없다'라는 말을 해 줄 수가 없어서일 수도 있지요. 묻지 않아서 듣지 못하면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넓은 강을 헤엄쳐 건널 수 있지만, 묻는다면 물어서 무언가 듣는다면 '없다'라는 거니까 말이에요. 어떤 경우든 나를 위해 배려한 행동일텐데 말입니다.
이제 내 나이, 인생의 반환점을 조금 돌아섰습니다. 어줍잖으나마 이룬 것이 있고 가진 것도 있을 겁니다. 물론 잃어버린 것이 더 많겠지만 그나마 나는 새로 얻은 그것을 잘 간직하고 돌아와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맡겨놓은 구슬이 의심되듯이, 때로는 내가 과연 애초에 품었던 목표를 잘 활용해 쓰고 있는지, 가져야 할 것을 갖고 이 생에서 내가 풀어야 할 숙제를 잘 풀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파도가 거칠어 헤엄치기가 어려울수록 더 매달려 목을 죄려드는 고양이가 성가실 때면, 강 건너편에 닿지 않고서는 구슬을 확인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만일 고양이가 파란 구슬을 물고 있지 않다면 등에 태우고 힘들게 강물을 건너서 뭐하겠나 하는 생각으로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가기 위해 미리 죽을 수는 없듯이 때로는 묻지 말고 행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묻지 않는 것은 회피하는 게 아니라 나와 세상과의 암묵적인 가치를 믿는 것이라 하겠지요. 무엇인가 이루고 얻어내면서 내 몸과 영혼의 평화를 유지한다는 게 그렇게 힘든 건지도 모릅니다. 그 믿음 속에서 스스로 해야 할 바를 다하며 베풀고 살아가는 게 어쩌면 파란 구슬을 품고 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현열 동화작가·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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