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페이퍼 북(Paper Book)

기원 105년, 중국의 채륜이 종이를 발명한 것은 인류문화사에 몇몇 획기적 사건 중 하나였다. 물론 채륜의 발명 이전에도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를 이용해 종이와 유사한 형태를 만들어 사용하긴 했다.

그러나 비록 수작업이라 하더라도 제책(製冊)을 할 수 있는 일정 규격과 대량 생산을 전제(前提)한다면 파피루스는 엄밀하게 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하간 종이의 발명은 그간 대나무, 양파지, 점토판 등의 소극적이고 불확실한 기록 수단에서 확고한 기록 매체로, 그리고 대량의 정보제공 수단으로 진보했다.

그러나 문명의 발전은 예측을 불허하게 진화를 거듭해서 오늘날에는 종이로 만든 정보 전달의 매체, 책의 운명을 바꾸고 있다. 이른바 e-book이라는 것도 그 중 하나인데, 인터넷 또는 휴대전화, PDA 등 다양한 매체로 종이 없는 책을 열람하고 있는 것이다.

e-book은 1999년에 출현했는데 잠정집계로 올해 상반기에 대략 350만여 명이 10만 종에 이르는 e-book에 빠져 있다고 한다. e-book의 출현을 놓고 한때는 '역시 책은 종이로 만든 것이어야 한다'던 비판론이 무색하게 되어 버린 게 현실이다.

게다가 지난 9월 13일 삼성전자에서는 나노공정을 통해 256메가 플래시 메모리 기술을 세계최초로 개발해서 손톱 크기의 메모리에 16기가바이트라는 엄청난 용량을 저장하고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바야흐로 페이퍼 북의 운명이 기로에 섰다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페이퍼 북, 종이책의 장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든지, 안거나 눕거나, 엎드리거나 바로 빠져들 수 있는 종이책만의 세계가 지닌 무궁한 매력, 그 묘미를 어찌할 것인가. 군것질꺼리를 옆에 놓고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책장을 넘기는 재미, 그 미묘한 재미를 깊어가는 이 가을에 권하고 싶다.

박상훈(소설가·맑은책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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