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비단길에서 만난 세계사

정은주·박미란·백금희 지음/ 창비 펴냄

인류사가 교류와 소통의 역사란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전 세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연결되는 요즘에야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 교류와 소통의 역사는 길고도 험난했다.

때로는 무역의 옷을 입었고, 때로는 정복과 전쟁의 모자를 쓴 채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이다. 가령 당나라와 이슬람제국은 1천 년도 훨씬 전에 지금 봐도 놀랄 만한 교류와 소통을 했고, 몽골제국은 문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는 찬란한 이슬람문명이 자리하고 있고, 우리의 선조 고선지와 혜초와 장보고가 우뚝 서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 나라의 역사를 넘어선 시각의 역사교양서는 흔치 않다.

왜일까? 교류사적 관점의 역사교양서를 쓰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 탓일 게다. '비단길에서 만난 세계사'(창비 펴냄)는 오랜 연구와 토론과 재집필의 과정을 삼 년간 십수 차례 반복한 끝에 나온 문명교류사이다.

정은주, 박미란, 백금희. 역사교사와 방송작가, 신문기자 출신의 세 여성이 자신있게 내놓은 서유럽과 중국의 눈에서 벗어나 우리 눈으로 살핀 비단길의 역사이다. 몽골족, 거란족, 돌궐족, 흉노족 등등.

역사의 조연으로만 등장한 그들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게 거의 없다. 기껏 약탈이나 일삼는 문명 이전의 상태에 머무르는 존재였을 뿐이다. 세계사에서 흉노는 진나라 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쌓는 대목에 등장하는데, 진나라를 침략해 각종 물품을 약탈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진나라가 그들과 화친정책을 펴면서 그들의 기병문화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나, 거꾸로 한나라 무제가 그들을 치기 위해 월지에 파견한 사신 장건이 동서문명 교류에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는 점은 소홀하게 다뤄지곤 한다.

그게 몽골로 이어지면 상황은 더 뚜렷해진다. 몽골은 유라시아의 동과 서를 잇고, 유목문명과 정주문명이 만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유라시아를 하나의 문명권으로 만든 바 있다. 이른바 '세계화'를 이룬 것이다.

저자들은 이 책 곳곳에서 우리 눈으로 비단길의 역사를 바라보려 한다. 기존의 눈이라면 당연히 배제되었을 북방 유목민족과 이슬람을 상세히 조망하는가 하면, 우리나라와 비단길의 역사를 연결하려 시도한다.

가령 잘 알려진 가야의 허황옥이나 신라의 처용설화뿐 아니라, 사마르칸트 교외에서 발견된 벽화 속에 있는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신의 모습 등은 그 뚜렷한 예다. 7세기 후반 치열해지는 대당전쟁에서 동맹세력을 찾아 나선 고구려의 외교정책과 연관해보면,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신들이 왜 그 먼 곳까지 가야 했는지 분명해진다.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관점에 따르면 비단길은 로마에서 장안까지다. 그러나 저자들은 최근 일기 시작한 비단길의 '한반도 연장설'에 많은 관심을 쏟아 그 개연성에 무게를 두고 책을 집필했다.

고조선부터 조선까지 중국을 통한 간접교역은 물론 서역과의 직접교역 양상을 하나씩 파헤쳐 비단길이 한반도까지 이어졌음을 면밀하게 증명한다. 그뿐 아니라 비단길에 스민 우리 조상의 발자취를 좇는 데도 정성을 기울였다.

책 속에 들어 있는 25여 컷의 입체지도는 비단길의 지형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특별 제작해 초원과 산맥, 사막의 느낌이 살아 있다. 또 엄선한 140여 컷의 자료사진은 동과 서가 어떤 문물을 주고받았는지 그 양상을 생생하게 일러준다. 특히 현존하지 않는 몇몇 장면에서는 상상도를 삽입해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조향래기자 sword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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