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성매매=노동'?

매춘의 역사는 고대 원시 공동체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종족 번식이 인류 발전의 토대가 되면서 매춘도 함께 시작됐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은 합법적 매춘 계약"이라는 극단적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사원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고대 인도 이집트 페르시아의 매춘은 르네상스 시대 '성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연결되며 대중화됐다. 그 후 경제적으로 몰락한 계급의 여성들이 성매매에 나서면서 매춘은 확산됐다. 17세기 런던에는 5만 명의 매춘부가 있었다고 한다.

◇ 우리나라 매춘의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된다. 유녀'기녀'기생 등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조선 말기까지 매춘은 일부 특수 계급에 한할 뿐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생긴 공창제도는 매춘의 대중화를 불렀다. 공창제는 미군정 시절 폐지됐지만 한국전쟁 와중에 기지촌으로 부활했다. 달러가 귀하던 산업화 시절, 매춘은 근대화의 한 주역으로까지 불렸다. '기생 관광'은 당시 그 상징이었다.

◇ 우리 유흥 문화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세계 각지에 한국식 룸살롱이 전파됐다. 단란주점'노래방의 양산은 룸살롱의 하향 평준화를 유도, 나라 안 성매매 산업의 확산을 부채질했다. 섹스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직'간접 종사자도 수백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매춘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낙타 아줌마, 노래방 도우미까지 생겼으며 인터넷 성매매도 극성이다.

◇ 최근 성매매 여성들이 국내 최초로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단체협약까지 체결했다. 경기 지역 성매매 여성 200여 명이 '민주 성노동자 연대'를 구성하고, 80여 명의 성매매 업주로 구성된 '민주 성산업인 연대'와 단체협약을 체결했으나 그 성격과 자격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나 여성 단체는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한 마당에 불법 행위의 주체들이 맺은 협약은 그 자체로 무효라고 한다.

◇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이들은 생존권 보장 차원에서의 노조의 필요성을 강변하고 있다. 성매매가 노동이냐, 아니냐는 사회적 공론화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성매매는 엄연히 불법이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성매매 여성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매춘 공화국의 오명은 법의 제정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노력과 배려로 풀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서영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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