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人生에는 은퇴가 없다-(16)성(性)벽을 허물다

우리 사회에는 벽이 많다. 그 중 일부는 마치 난공불락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한국의 여성이 남성에게 느끼는 벽 또한 오랫동안 그러했을 것이다. 공직 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내무부 지방행정국장으로 있던 1991년 당시 '지방공무원 임용령'은 성별(性別)을 분리하여 시험을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실제 공직 임용에서 여성에게 할당되는 비율은 10~15% 내외였다.

나는 이 규정을 없애는데 앞장섰는데, 전국 곳곳에서는 수시로 논두렁을 다니고 산불이 나면 산도 타야 하는 지방공무원의 현실을 담당 국장이 너무 모르는 것 아니냐며 반대를 했다. 그 일을 겪으며 여성 차별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후 95년 민선 도지사가 되어 21세기 비전을 만들면서 '여성'을 정보화나 경제와 같은 비중으로 다뤘다. 앞으로 여성의 소프트파워를 활용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유교적 전통과 남아선호 사상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지역이 바로 경북인데 너무 앞서나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런 가운데 설립한 것이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이다. 남성 중심적 사고와 문화에 젖어 있는 기존 공무원 조직을 탈피해 여성의 눈으로 여성의 문제를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1997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여성개발원이 문을 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여성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그때 채용된 연구원 중에는 노동부를 거쳐 지금 여성가족부 국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분도 있는데 그만큼 여성정책개발원의 수준이 높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후 개발원은 여성 정책에 관한 한 최고의 싱크탱크(think tank)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여성고용 인센티브제나 농촌 여성의 보육문제 해결을 위한 '보육정보센터' 설치 등의 많은 아이디어가 거기에서 나왔다.

그런 노력을 좋게 평가했는지 2000년 2월 '전문직 여성클럽 한국연맹(BPW)'은 나에게 Gold Award(금상)를 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마침 그때는 정기인사 시기였는데 그동안 예비역 장교 출신 남성 공무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왔던 민방위 과장에 최초로 여성을 임명했던 터라 그 상이 더욱 뜻 깊게 느껴졌다. 상을 받으러 가니 전문직 여성클럽 회장은 "가장 보수적인 고장에서 가장 개방적인 도지사가 나왔다"며 축하해줬다.

20C 여성에 관한 대표적 이슈가 성차별이었다면 이제는 양성평등과 사회참여가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다. 더구나 저출산과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여성의 가치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성이 지닌 창의성과 감수성과 유연함,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다.

이의근 경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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