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열린 물길, 열린 마음

청계천이 복원되었다. 그 물은 콘크리트로 덮인 후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4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마치 먼 길을 갔다가 고단한 여정을 끝낸 후 이제 집으로 돌아온 것 같다.

노자(路資)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에는 '먼 길을 오가는데 드는 비용'이라고 적혀 있다. 청계천의 물이 새물맞이를 하기까지 참 많은 노자를 치렀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비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자연과 문화를 향한 정신적 노자가 없었다면 아마도 청계천의 물은 다시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산업화, 도시화가 가속화될수록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자연을 찾아다니고 그리워한다. 그리고 도시와 더욱 더 떨어진 자연을 접할수록 사람들의 성품은 착해진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담겨 있는 한 구절이 있어 인용해본다. 소설가 박태순 선생의 '국토와 민중'(한길사)이라는 기행산문집 책 날개에 있는 구절이다. "차를 타기보다는 걸으면서 우리 국토의 음악이 들려주는 명연주에 넋을 잃고, 민박을 하게 되는 집의 사랑방 문화에서 국토와 민중의 역사를 들으며 감동하기 한두 번이 아니었다. 국토는 자연으로서는 금수강산이었고, 인문지리로서는 민중의 역사였다."

작가의 이 말이 보여주는 시선은 여러 가지지만 국토, 자연, 민중이라는 단어들에서 청계천 복원이 가지는 의미가 남달리 연결지어졌다. 그것은 바로 청계천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위치, 민중들의 한과 함께한 역사, 물길의 복원이라는 여러 이유에서였다. 청계천은 서울의 중심을 흐르고 있는 천이다. 그리고 청계천이 가지고 있는 역사는 바로 노동과 산업화의 상징이었고, 인위적으로 자연을 덮고 다시 인위적으로 복원한,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청계천 복원이 사람들의 마음에 왜 이렇게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그것은 외형적으로 보이는 모습보다는 바로 물길이 다시 살아나 새로운 생명을 준 것과 같이 삶의 갈등이 해소되고, 막혔던 숨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은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청계천이 복원될 수 있었던 것은 크게는 시민 모두의 염원이지만 작게는 청계천 주변 상인들, 청계천에 삶의 터전을 갖고 있는 모두의 희생과 화합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서울은 거대도시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만큼 다종다양한 직업과 사람들이 모여듦에도 불구하고 도시가 커지면 커질수록 도시의 문화는 더욱 폐쇄적이 되고 만다. 한 건물에서 살면서 이웃과 단절하고 사는 아파트 문화는 이제 일상적인 현상이다. 교통문제나 오염문제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올라가는 땅값 문제, 도시빈민 문제, 그에 따르는 인간성의 상실, 또 세대간의 단절은 이제 만성적 도시문제가 되었다.

청계천이 보여준 진정한 힘은 이런 대도시의 필연적인 이해타산과 갈등을 모두 극복하고 화합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삶 또한 변화시키고 있다. 먼저 도심 한가운데를 소통하는 물길은 황폐해진 도시민의 마음을 열어주었다. 차를 타고 가야했던 그곳을 이제는 천변을 따라 걸어가고, 곳곳에서 행해지는 거리예술, 그리고 아침이면 운동을 하고, 밤이면 아름다운 조명 아래 산책을 하면서 사람들은 일상의 여유를 찾고 답답함을 벗어버린다.

특히 청계천이 거리와 거리, 세대와 세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소통의 끈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도 놀랍다. 앞서도 말했듯이 국토가 민중의 역사이듯 길은 지나가는 사람에 따라 나이를 먹는다. 그래도 장년층 이상에게는 청계천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남아 있지만 젊은이들에게는 그저 복잡한 곳이다. 그러나 복원된 청계천은 이들을 소통시켜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열린 물길에 따라 도심의 하늘도 열리고 사람들의 마음도 열리고 있다. 물길은 빌딩 숲속을 가로지르며 아스팔트 도시에 향기를 불어넣고 사람들의 삶도 바꾸고 있다. 그래서 청계천은 크다. 너무나 커 보인다.

유인촌(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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