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청마다 "돈달라" 아우성

대구 기초단체 재정 갈수록 열악

내년 예산안을 짜는 대구시내 기초 자치단체 예산담당 공무원들의 표정은 한결 같이 어두웠다. 구청내 각 부서들마다 돈 달라고 아우성인데 줄 돈이 없기 때문.

살림살이에 차질을 내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규모로 살림을 줄일 것이라고 이들은 한결 같이 얘기했다. 이대로 가다간 지방 재정이 빈사상태에 빠진다는 걱정과 함께 였다.

전문가들은 중앙정부가 세금수입을 사실상 독점하는 현 세제로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무의미하다며 지방으로 돈을 돌려주는 길만이 유일한 위기 탈출구라고 강조했다.

◇해마다 일이 늘어요

10년전 이양받은 시설물, 자동차 환경개선부담금 업무를 맡은 달서구청 담당 인력은 고작 2명. 2명이 연간 14만 건에 이르는 고지서를 발송하고 징수업무를 관리한다.

이승화 담당은 "인력, 재정 지원은 늘어난 것 없는데 10년전부터 지방자치를 핑계로 중앙정부의 이양 업무들이 매년 새로이 생긴다"며 "중앙정부에 대해 환경개선부담금의 지방교부비율(9%)을 1%만 늘여주면 숨통이 트인다고 얘기해도 10년간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대구시내 7개 구청은 지난해 7월부터 정보통신부로부터 통신시설 사용전 검사업무를 이양받았다. 그러나 7개 구청 어디에서도 전담인력 도입을 꿈도 못 꿨다. 관계자들은 "최소 1~2명이 필요하지만 업무 수수료는 연간 수백만원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인건비를 마련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행정분야도 사정은 마찬가지. 달서구청 교통과 주정숙 교통행정팀장은 "1990년대말 이후 공영주차장 관리가 시에서 구청으로 옮겨오면서 지금까지 4, 5배나 관리면적이 증가했지만 인력은 10년 전 그대로(일용직 1명)"라 전했다. 서비스가 제대로 될 리 없다. 결국 구청은 욕만 먹는다.

7개 구청 교통과는 올초 5t 이상 개인화물차 관리업무까지 떠안았다. 달서구청 박상호 운수관리 팀장은 "교통행정은 1990년대 말 이후 업무 이양이 늘어나고 있지만 인건비 지원은 전무해 시민들이 툭하면 행정 공백이라고 한다"며 말했다.

◇쓸일은 산더미, 쓸돈이 없다

일은 늘고 세수는 오히려 줄고 있다. 올해부터는 재산세와 종합토지재산세가 재산세로 일원화한데다 복지 시설 운영비 등을 지원하는 중앙정부의 분권교부세까지 모자라 구청 재정 구조를 예년보다 훨씬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달 재산세 부과 현황에 따르면 대구 7개 구청의 재산세 총액은 948억 원 수준으로 종합토지세와 재산세로 따로 거뒀던 지난해와 비교해 300억 원 정도 감소했다. 정부가 종합토지세 결손분을 보전해 주기로 약속 했지만 자체 수입에서 종합토지세 비중이 큰 구청들은 하반기 사업 추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성구나 달서구의 감소분은 예년의 10% 대에 불과하지만 서구(31.6%)와 남구는(38.7%) 30%대를 훨씬 웃돌고 있다. 구청 담당자들은 "정부가 자치구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추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신설한 복지법인들은 분권교부세 부족으로 운영비 지원이 끊길 위험이다. 정부가 2004년말 기준으로 분권교부세를 책정해 올해 문을 연 생활시설 3곳과 이용시설 17곳은 국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

하루 평균 800명이 이용하는 한 신설 복지관은 "지금까지는 겨우 버텨 왔지만 4/4분기 예산 1억원을 지원 받지 못하면 당장 운영을 중단해야 할 판"이라 걱정했다.

정부는 조정안으로 분권교부세 부족부분을 담뱃값 증가에 따른 담배소비세 인상분으로 해결 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금연 인구 증가에 따라 담배소비세는 오히려 줄어들어 대구 담배소비세는 지난 달 말 현재 지난해 동기의 76%(623억 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

또 세수는 주는데 내년 세출은 급증했다. 27일 재조정한 대구시 및 8개 구·군청의 내년 선거비용은 272억원. 선거관리위원회의 재조정으로 당초 7월 423억원에서 151억원이 줄었지만 지방재정에 타격을 주기는 마찬가지.

이신학 남구청장은 "5배 이상에서 3, 4배 수준으로 떨어진 것 뿐이고 지방 기초의원 유급화 부담이 여전하다"며 "다음달 7일 중구청에서 대구 구청장.군수 협의회를 열어 심도 있는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빈사 상태에 빠지다

"중앙에서는 지방 업무 이양때 1, 2명 인건비 느는 정도 가지고 무슨 생색이냐고 핀잔을 줍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자체수입으로는 인건비도 해결하지 못하는 처지니까요."

남구청의 올해 예산규모는 906억 원. 이가운데 지방세와 세외수입을 포함한 구청 자주재원은 겨우 271억 원에 불과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중앙정부와 대구시 보조금에 의존한다. 반면 올 인건비 예상치는 311억원. 자주재원으로는 인건비조차 해결하지 못할 사정.

서구청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올해 예산 1천82억 원 가운데 자주 재원은 355억원에 그치지만 인건비는 382억원에 이른다. 중구청은 지난 2002년 이후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자체 투자 비율이 전국 69개 자치구 가운데 68위를 차지하고 있다. 구청 관계자는 "국비보조금은 패션쥬얼리 특구, 서문시장 활성화 사업 등 정해진 그대로 사용할 뿐"이라며 "지역 현안 사업에 투자할 예산은 오히려 줄어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풀어야할까?

전국 기초자치단체들은 오래전부터 조세구조 전환과 세입자치를 요구해 왔다.

이들에 따르면 지방재정 분권의 첫째 숙제는 조세구조를 바꾸는 것. 올해 예상되는 조세 수입 총액은 154조520억 원. 이 가운데 지방세는 31조9천834억 원으로 전체의 20.8%에 불과하다.

일본의 경우 중앙과 지방의 재정규모 비율이 37대 63이며 독일은 29대 71 수준이다. 곽대훈 달서구청장 권한대행은 "참여 정부가 추진하는 지방분권은 재정분권이 전제되지 않는 한 말잔치에 그칠 수 밖에 없다"며 "진정한 자치를 실현하려면 지방 예산 비율을 높이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 다음은 세입자치. 정부가 조세구조를 장악, 세목설정이나 세율은 물론 과표산정 등 세부적 사항까지도 법률로 정해 지자체 차원의 조례를 구속하고 있기 때문. 지자체들은 세금을 감면하는 조례는 제정해도 상위법에 따라 올려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자체들은 "정부는 내년선거 및 유급화 비용을 지자체에 떠 넘기기에 앞서 조세 제도부터 먼저 혁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준기자 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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