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별다른 태풍만 없다면 올 벼농사는 대풍이 될 것 같다 한다. '풍년'이라면 무조건 좋은 것, 기뻐할 일이라고 여기는 도시 사람과 달리 농부들은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쌀이 풍작이면 쌀값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흉년이 돼도, 풍년이 와도 근심하게 되는 게 농심인 모양이다.
농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볏논은 이즈음 한창 풍요롭다. 눈부신 황금물결의 완벽미야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더러 연둣빛이 남은 미완의 아름다움 역시 가슴 시리도록 곱다. 무거운 이삭을 매단 채 낫질을 기다리는 모습은 겸손하면서도 처연하다. 바람결에 툭 툭 튀어오르는 벼메뚜기며 논두렁콩에 매달려 노는 홍굴레도 벼잎을 따라 누런 옷으로 갈아입었다.
추수는 단풍처럼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다. 한 선배가 충청도의 친구가 농사지어 보내온 것이라며 햅쌀 한 됫박쯤을 건네준다. 유난히 희고 야들야들한 햅쌀. 봄날의 훈풍과 변덕, 찌는 듯하던 여름 햇살, 폭우, 심술꾼 태풍, 농부의 땀방울이 이 작은 한 톨에 오롯이 배어있다. 쌀 한 톨은 그대로 소우주다.
그래서 햅쌀밥엔 소우주의 생명이 담겨 있다, 특히나 가마솥에 청솔가지로 불 때 지은 밥의 그 맛이란… 밥물이 넘을 때부터 군침 삼키기 시작한 아이들은 밥솥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드디어 엄마가 솥뚜껑을 열면 훅 끼쳐오는 구수한 밥내음에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놀놀하게 눌은 누룽지를 한 조각씩 주면 콧물 빨아먹던 아이들 입가엔 행복한 미소가 번져나가고….
쌀의 주성분인 탄수화물 속 불포화지방산은 시간 따라 산화되고 변질되므로 묵은 쌀로 지은 밥은 맛이 못할 수밖에 없다. 결국 '신선함'이야말로 햅쌀을 햅쌀답게 하는 요체다. 요즘에야 다이어트 열풍 탓에 밥이 거의 '공공의 적(敵)'이 되다시피해 굳이 햅쌀을 찾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그러기에 이런 시절에, 연년이 멀리 충청도에서 햅쌀을 보내오는 마음씀씀이가 여간 멋스럽지 않다. 다만 아쉬운 건, 아름다움이 오래가지 않듯 그 어떤 '신선함'도 종내 시들고 사라진다는 사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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