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지대 아이들

"집에서 쓰던 그릇인데 먹을 걸로 바꿔주세요."

태국과 캄보디아 인근 시장에는 10세 남짓한 아이들이 구걸을 하거나 물건을 파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아이들은 대부분 캄보디아 출신. 상대적으로 부자나라인 태국에 있는 시장에 넘어가 산에서 따온 열매, 오래된 가재도구 등을 팔아 먹을 것으로 바꿔 돌아온다.

이들이 학교도 포기한 채 시장바닥에 생계를 위해 나온 것은 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부모들 때문. 캄보디아 국경 근처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아픔은 내전의 상처다. 이들은 오랜 내전으로 큰 부상을 입거나 그동안 묻어놓은 지뢰를 밟아 팔, 다리를 잃고 불구의 몸이 되어버렸다.

해질 무렵 태국쪽 시장에서 다리를 건너 캄보디아로 '터벅터벅' 걸어오던 어린 여자아이 5명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삶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어깨를 축 늘어뜨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장사를 해와 이미 생존을 위한 대처방법엔 이골이 나있는 듯했다. 비자도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것도, 외국 관광객들에게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돈이나 먹을 것을 얻어내는 데도 익숙했다. 태국-캄보디아 국경을 넘을 즈음 만난 한 여자아이는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보이며 '동전이 없느냐?'는 말을 하려는 듯 손짓을 하기도 했다.

두 나라의 경계가 되는 이곳은 태국 방콕의 북부 버스터미널에서 4시간30분정도 걸린다. 달력이나 책에서 수없이 봤던 그림보다 정교하고 세밀한 돌덩이 유적지인 '앙코로와트 사원'으로 가는 관문인 셈.

앙코르와트 유적지를 보기위해 세계 각지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 '씨엠리업'. 이곳은 숙박시설과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으며 캄보디아 국경에서 택시를 타고 비포장도로로 3시간정도 가야 된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 민박집(Guesthouse)은 6개월 전에 생겼다. 한국 여행객들이 오면 넉살 좋은 사장님이 시원한 열대과일 주스를 주며 '어서 오라'며 반겨준다.

잠자리에 들어 잠을 청해 보지만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전날 태국 방콕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교무실, 교실, 놀이방 등 3개의 공간이 전부인 2층 건물 'Lab School Project'. 저학년, 고학년 각 30명이 전부인 이 초등학교는 아담한 유치원 같은 규모의 작은 학교였다.

건물 뒤 나무로 된 급식대에는 초등학생 몇명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천천히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무 책상 30여 개가 놓여져 있는 교실에 붙여진 시간표는 한국에서 보던 것과 같았다. 단지 한국말이 아닌 태국말로 표기되어 있을 뿐.

미술시간이 되어 한 여학생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스케치북 좀 보여줄 수 있니?" 몸짓 손짓으로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하니 황당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을 대충 눈치챈 다른 학생이 그 여학생에게 귓속말로 속삭이자 표정이 밝아졌다.

이내 웃으며 그림일기가 그려진 스케치북을 보여줬다. 또박또박한 글씨에 색연필로 곱게 그려진 그림은 아이와 닮았다.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들의 신나는 표정, 또래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들과 옷차림이 눈길을 끌었다.

그리 좋은 교육환경은 아니었지만 학생들은 행복해보였다. 태국의 학생들은 가족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평준화된 교육에 익숙해져 있는 듯했다. 한국과 같은 교육열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학교 부근에 얻은 숙소에서 이 집 주인의 아들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크레파스를 선물로 주었다. 하지만 아홉살이라고 하는 이 아이는 크레파스를 쥐는 법조차 몰랐고 학교조차 다니지않는다고 했다. 비디오, CD 등을 파는 한 이웃(28)은 "이 아이의 부모는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학교에 보낼 필요가 없다"고 말해줬다.

이 아이의 손을 잡고 '수박'을 그려줬더니 너무 좋아했다. 이 아이는 늦은 밤까지 그림그리는 것을 즐겼고 헤어질 땐 아쉬워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이 학교에서 만난 한 교사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아이들에게는 착한 심성만 가르치면 돼요. 지식은 훗날 학문을 해서 먹고 살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니까요."

한국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 태국의 어린 학생들이 더 부러운 건 무엇 때문일까?

안주희(경북대 미술학과 3학년)

후원 : GoNow여행사(로고 및 연락처)

사진: 1. 태국 국경을 넘나들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캄보디아 국경지대 아이들. 이 아이들은 산에서 따온 열매, 오래된 가재도구 등을 내다팔고 먹을 것을 사온다. 2. 방콕 거리의 그림 판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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