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언어가 난삽해졌다. 열린우리당조차 해득을 못해 우왕좌왕이다. 이른바 대연정은 물건너갔지만 그 과정에서 튀어나온 말들을 놓고 언론은 헤매고 있다. 정치판을 새로 짜려는 소리 같기는 한데 무슨 의도가 담긴 것인지 알 길이 없다는 식이다. 걸핏하면 그만두겠다는 말은 더 어지럽다. 막 반환점을 돈 대통령이 왜 권력 이양, 2선 후퇴, 임기 단축, 사임이란 단어를 번갈아 쏟아내는지 괴이쩍다. 무엇 때문에 자꾸 물러나려는 걸까. 그의 중도 사임 발언에는 그야말로 진정성이 담긴 것인가. 얼마 전 청와대를 다녀왔다는 정대철 전 의원은 실제 중도 하차할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놨다. 노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동지인 그는 "임기 8, 9개월을 남겨두고 정말로 대통령직을 그만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언론에 밝혔다. 여기저기서 비슷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무슨 생각에 사로잡혀 대통령직을 던지려 하는 걸까. 떠도는 길거리 분석을 바탕으로 대통령 심중을 헤아린다면 우선 흥미 상실이다. 이런 상념에 빠져 뒤척이는 청와대의 밤은 길 것이며 앞으로 무슨 재미가 남았겠나 하는 불안감이 불쑥불쑥 들 것이란 가설(街說)이다.
그 다음은 '용퇴의 미학'에 몰입하고 있지 않으냐는 거다. 앞서 거쳐간 대통령들은 무단으로 또는 필생의 대권욕으로 청와대를 차지한 후 끝까지 자리에 연연했지만, 노 대통령은 그와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싶어한다는 주장들이다. 당선부터 도덕적 우월성을 자부하는 그는 전임자들과 달리 정치 자금과 권력 기관을 멀리하고 있는 자신의 차별성을 임기 단축 카드를 통해 극대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은 대통령병 환자가 아니며 최고 권좌도 초개같이 여겨 버리는, 오로지 국민과 나라를 위해 대의를 좇은 지도자라는 메시지를 각인시키려 할 것이란 분석이다.
쓸쓸한 퇴장에 대한 불길한 예감 때문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지금 같은 정치적'경제적 상황이 그대로 가거나 더 나빠지면 임기를 마치고 나가는 뒷모습이 어떻게 비쳐질 것이냐는 두려움이 그것이다. 그의 성격상 역대 대통령들처럼 국정실패나 지지율 바닥이란 비판 속에 퇴임사를 읽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할 것이란 얘기다. 더더욱 노사모의 열광 속에 당선하고, 광화문의 촛불 물결 속에 탄핵에서 부활한, 그런 화려한 장면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참담한 추락일 바에야 차라리 대의명분을 내걸고 장렬하게 대통령직을 던져 '노무현답다'는 소리를 듣는 게 낫다고 생각지 않겠느냐는 거다.
어떤 이는 국회의원 시절부터 써먹는 '습관성 사퇴 카드'라고 하나 거기서는 대통령에 대한 조롱이 들리는 것 같다. 거기서는 경박스런'아니면 말고' '밑져야 본전' 따위가 느껴진다. 설마하니 막중한 자리를 가지고 그럴까 싶지 않다.
어쨌든 이러한 관점들에는 대통령의 중도 하차를 온당하게 보지 않는 시선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탄핵의 경우처럼 사퇴 또한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이 다수다. 밉든 곱든 대통령은 온전히 임기를 채우며 그 소임을 다하라는 뜻이다. 그래도 정 물러나겠다면 지쳐있는 국민을 행복하게 해놓고 가라는 명령이다. 잠 못 이루는 나날, 컴퓨터만 두드리지 말고 새벽 이슬 맞으며 민생 현장을 탐방해 보라는 원망이다. 지금 누가 뭘 얘기해도 대통령의 머릿속은 딴 데 가 있겠지만 민심도 많이 굳어 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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