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에서 본 중세/키아라 프루고니 지음/도서출판 길
중세는 과연 '암흑의 시기'였을까. 우리가 갖고 있는 역사에 대한 고정관념 중에서 중세에 대한 것 만큼 부정적인 것도 드물다. 그러나 최근 서양 사학계의 새로운 연구경향은 중세에도 나름대로의 발전이 이룩되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기독교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역사가 정체되었다는 생각은 이제 더이상 서양 중세를 규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로마2대학 중세사 교수인 키아라 프루고니가 지은 '코앞에서 본 중세'(도서출판 길)는 서양 중세가 암흑의 시기가 아니었음을 '물건의 생활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의 저명 역사학자 자크 르 고프의 말처럼 "중세가 결코 진보와는 무관한 암흑의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생기있고 중요한 발명들로 가득 차 있었음을 보여주는 한 시대의 초상화"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중세에 발명되었거나 새롭게 창안된, 그리고 우리가 지금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물건의 작은 역사를 다양한 시각자료를 동원해 역사적 실체를 밝혀내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흔히 보지 못했던 풍부하고도 각각의 물건에 적확한 사진자료들을 발굴해 제시함으로써 서양 중세의 세계를 또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중세의 발명품은 그 가짓수가 중요한 것만 대략 헤아려도 수십가지가 넘는다. 그 범위도 안경.종이.대학과 같이 공부와 관련된 것에서부터 체스.카드.카니발과 같은 오락 분야, 단추.속옷.버클과 같은 패션 분야, 파스타와 포크와 같은 음식 분야, 편자나 창 조준대.말 어깨줄과 같은 전쟁 분야를 거쳐 심지어 산타클로스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물론 저자가 언급하는 모든 것들이 중세에 발명된 것은 아니다. 종이와 같이 중국을 거쳐 들어온 것이 있는가 하면, 아라비아 숫자는 오래 전 인도에서 발명되어 유럽에 흘러들어 왔다.
활판 인쇄술 같은 경우는 르네상스 시기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발명품들이 결코 진공상태에서 갑자기 타나난 것이 아니라, 오래 전의 것이 새롭게 발굴.개량되었거나 다른 지역의 것이 전래되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된 것이라는 점을 저자는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여류 역사학자인 키아라 프루고니는 '안경'에서부터 그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생활 발명품의 세계를 어떤 연관관계 속에서 전개해나간다. 예를들면, 안경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같은 재료를 쓰는 유리창의 발명에 대한 이야기로 슬쩍 넘어간다. 15세기의 사자생(寫字生) 장 미엘로의 작업실도 바로 그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본다.
그 안에는 마침 겨울이었는지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벽난로 역시 중세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저자는 우리가 친근하게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의 세계를 마치 우리가 현재 직접 쓰고 있는 것처럼 묘사한다.
중세가 결코 먼 과거의 세계가 아님을 들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중세에 발명되었거나 새롭게 재창조되었던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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