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2학기 들어와서 갑자기 집중이 안 되고 공부가 하기 싫어진 고3 학생입니다. 이런 질문에 답을 해 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고등학교 때 죽도록 공부를 해서 명문대학에 가야만 장래가 보장되는지에 대해 회의가 듭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못하면 앞으로 얼마나 손해를 보게 될지도 궁금합니다.
답 : 거의 모든 고3들이 학생과 같은 생각을 수도 없이 해 보았을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선을 다해서 공부해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길을 보다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명문대학에 가고 안 가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교시절에 갖추게 되는 국영수를 비롯한 기초과목에 대한 실력은 앞으로 학생이 하게 될 모든 일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자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인 앨런 크루거가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아주 주목할 만한 보고서를 하나 낸 적이 있습니다. 그는 1976년에 미국 30개 대학에 입학한 1만4천 명 학생들이 20년 후인 1995년에 얼마의 연봉을 받는지를 조사했습니다. 조사 결과는 명문대 출신이 비명문대 출신보다 평균 연봉이 2만 달러 정도 더 높았습니다. 그런데 조사대상자들을 입학 당시의 SAT(대학입학적성시험) 점수로 다시 분류해 보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1976년 입학 당시 SAT 1천200점을 맞고 그 점수에 맞는 수준의 대학에 간 학생의 평균 연봉은 9만3천 달러였습니다. 그런데 같은 점수를 가지고 그보다 200점 정도 낮은 대학에 간 학생의 평균 연봉도 9만3천 달러였다는 것입니다. SAT점수가 같은 한에 있어서는 진학한 대학에 관계없이 20년 후의 소득도 비슷하다는 결론입니다. 이 조사 결과는 고교졸업 때의 기본 학력이 평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해석을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1976년 한국에서는 전후기로 대학 신입생을 뽑았습니다. 모든 수험생은 대학입학예비고사를 치러야 했고, 그 다음에 대학별 본고사를 쳤습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경북대 등은 전기(1차라고도 했음)였습니다. 반면에 성균관대, 한국외국어대, 영남대 등은 후기(2차라고도 했음)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가군은 연세대나 고려대, 나군은 서울대 등의 방식으로 성적에 맞추어 여러 차례 지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역 최상위권 인문계 학생의 경우 서울대에 떨어지면 가정 형편이 되는 학생은 성균관 대학이나 한국외국어 대학 같은 수도권 후기 대학에 지원을 했고 그렇지 못할 경우 재수를 하든지 지역의 후기 대학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연계 최상위권 학생이 서울대 공대에 떨어지면 재수를 안 할 경우 한양대 공대 아니면 지방대에 입학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전기 수도권 명문대와 후기 지방대 신입생들의 평균 학력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30년쯤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살펴보면 앨런 크루거의 조사 결과와 비슷한 현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76년 입학 당시의 대학입학예비고사(오늘의 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비슷한 학생들 간에는 수도권 명문대, 지방 국립대, 지방 후기대 등 출신 대학에 상관없이 현재 수입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수도권 명문대에 떨어진 많은 우수한 학생들이 지역 후기대에 다녔지만 그들 중 예비고사 성적이 수도권 명문대 학생에 못잖은 학생들 상당수는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를 비롯한 각종 고시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를 했고 오늘 현재 수도권 명문대 출신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 업무 능력을 발휘하며 중역의 직위에 올라 있습니다. 미국 사회에도 비명문대 출신의 지도자가 많이 있습니다.
앞의 예를 통하여 고등학교까지의 기본 실력은 나라에 관계없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사실은 학력 철폐의 논거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간혹 인문계 학생이 수학을 잘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합니다. 이 역시 같은 논리로 답할 수 있습니다. 인문사회 관련 업무라도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그 일을 더 잘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예체능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입시위주의 교육이 인성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창시절 공부만큼 인격수양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일단은 최선을 다해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취미활동으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며 자신의 소질을 개발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계층 이동의 통로로 교육이 지나치게 과열되면서 정도를 넘은 부모의 열성 때문에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스로 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발적으로 즐겁게 몰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학생들이 많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공부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십시오. 학생이 고민을 하는 이 순간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미래를 낙관하며 변화를 확신하는 사람은 과정을 중시하며 경쟁과 경쟁에 수반되는 긴장된 생활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어차피 11월 23일은 다가오게 되어 있습니다. 비생산적인 상념에 잠겨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미래를 낙관하며 공부에 몰두하면 하루하루가 덜 불안하고 초조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고교시절의 공부는 미래 모든 활동의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십시오.
윤일현(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ihn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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