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질투

영국 찰스 왕세자가 젊은 시절 어느 여인에게 보냈던 연애편지 6통이 경매에 부쳐져 호사가들의 입놀림이 바쁘다. '연애', 참 모처럼 만에 접하는 단어다. 이제는 조금씩 바래어 가는 낱말, 달콤하면서도 씁쓸하고 어딘가 이끼 내음마저 풍기는... 지난 시절 언니'오빠들의 분홍편지 배달부 노릇을 했던 세대에게 '연애'라는 단어는 어느 봄날의 살랑대던 미풍처럼 아련하다.

언제부터인가 '연애'라는 말 대신 '데이트'란 단어가 그 자리를 메우더니, 이젠 그조차 낡아버린 건가. 이른바 '데이트메이트(datemate)'가 대유행이라 한다. 이성 교제를 의미하는 데이트와 친구를 뜻하는 메이트의 합성어인데 의미하는 바가 참 묘하다. 데이트메이트와의 사귐에는 4대 원칙이 있다나 뭐라나. "사랑하지 말 것, 스킨십은 키스까지만 할 것, 감정이 식으면 깔끔하게 헤어질 것,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을 것." 언제라도 부담없이 만나고, 쿨하게 헤어진다, 질질 짜는 것도 매달리는 것도 없다. 다른 이성을 만나 이중 삼중 다리를 걸치는 것도 허용된다. 때문에 질투는 기피 대상 1호.

여기서 어쩔 수 없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사랑하지도 않고, 미운 정 고운 정도 없고, 질투의 감정조차 아예 없는 만남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걸까.

친구네 집 이웃의 새(鳥) 가게에 쿠쿠라는 이름의 앵무새가 있다. 사람을 본체만체 하다가도 땅콩 몇 알을 주면 대번에 "안녕하세요?" 꺽꺽한 목청으로 인사를 한다. 한 번은 녀석 맞은 편에 앵무새 조롱 하나가 새로 걸렸기에 짐짓 그쪽으로 발걸음을 떼자 거만하던 쿠쿠 녀석, 날개를 퍼덕이며 연방 안녕하세요를 외친다.

한낱 앵무새도 질투하거늘 하물며 사람일까. '영혼의 심술'로 불리기도 하나 질투는 분명 인간 본성 중 하나다. 장희빈이나 멕베드의 경우처럼 극심한 질투는 파멸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질투도 많다. 숱한 예술작품에서 보듯 사랑과 질투는 인류사의 영원한 테마다. 그러기에 탈무드에서도 "질투가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래서인데 데이트메이트족(族)들의 원칙대로 한 점의 질투도 간섭도 찾아볼 수 없는 남녀관계라면? 아마도 그런 만남은 분명 새우젓국 안 들어간 호박찌개마냥 밍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질투야말로 남녀 간의 감정을 새콤달콤하게 만들어주는 조미료이므로.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