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부모들 '스쿨존' 사수 팔걷다

"등하굣 길 내 아이 안전은 내가…

있으나 마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School Zone)에서 내 아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엄마', '아빠'들이 나섰다. 스쿨존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설치,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 특공대'가 등장했고, 스쿨존내 보호 설비 마련에 공동 기금을 조성하겠다는 학부모가 줄을 잇고 있다.

도로 기반 시설이 열악한 아파트 숲 속 초등학교들의 스쿨존이 교통사고 위험지대로 전락한 데다 정부가 추진하는 스쿨존 개선 사업마저 빛좋은 개살구로 겉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아이는 내가 지킨다

초교 3, 4년 두 자녀를 둔 주부 이영주(38)씨는 대구 달서구 상인초교 스쿨존을 지키고 있다. 그의 임무는 정문 앞 소방도로를 가로지르는 이동식 바리케이드를 사수하는 것. 오전 7시30분부터 9시까지는 일반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스쿨존인데도 기어코 이 곳을 지나다니는 얌체 차량들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가 만들어졌다. 길이 1m의 사다리 모양 바리케이드에 바퀴를 달았고, 상인 초교 어머니회 회원들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매주 한 번씩 돌아가며 스쿨존을 지키고 있다.

이씨는 "이름뿐인 스쿨존을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2년 전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며 "위험천만한 스쿨존에서 아이들을 우리가 직접 지켜 내고 싶었다"고 했다.

초교 2년 자녀들 둔 이기홍(42)씨는 최근 달서구청 홈페이지에 도원초교 스쿨존에 설치할 보도 및 가드 펜스 예산 내역을 질의했다. 구청 예산이 모자라 스쿨존 개선사업이 불투명해지면서 학부모들이 직접 돈을 거둬 개선 정비에 나서기로 한 것. 도원초교 앞 도로는 스쿨존이라고 하지만 학교 정문에서 아파트 단지 초입까지 300m 거리는 일반 도로보다 훨씬 위험한 곳. 왕복 2차로 좁은 도로에다 연일 상습 불법 주정차가 기승을 부려 차량 통행조차 힘겨울 정도다. 이씨는 "보·차도 구분이 없어 아이들은 매일 등하교길마다 차량과 차량 사이를 위태롭게 지나다녀야 한다"며 "학교 운영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한 뒤 축제 형식의 바자회를 개최해 돈을 모으고 급한 곳부터 우선적으로 공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왜 주민이 직접 나서야하나

대구 도원초교 하교길. 일대 스쿨존은 어린이 보호구역이라기 보다는 위험지역에 더 가까웠다. 스쿨존 표지판에는 '등하교길엔 학교 차량만 지나다닐 수 있다'는 문구가 선명했지만 일반 차량들까지 버젓이 통과하고 있었다.

신숙자 교감은 "학교 바로 옆에 공원과 약수터가 들어서면서 등교시간에 차량들이 봇물을 이룬다"며 "달서구청에 요청해 등교시간엔 약수 공급까지 중단했지만 교통 체증은 여전하다"고 했다.

1990년대 말 이후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달서구 곳곳에는 이름뿐인 스쿨존이 부지기수다. 대단위 아파트 입주에 따라 취학 아동은 급증하고 있지만 도로 기반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 4천 가구가 학교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도원초교는 1995년 개교 당시 382명에 불과했던 학생수가 지난 10년새 1천786명까지 늘어났지만 주 도로는 왕복 2차로가 고작이다.

달서구청 관계자는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해 차량 통행량을 줄여주고 싶어도 일부 주민들의 반발 우려로 곤란하다"며 "경찰에 일방통행 심의를 요청했지만 실행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했다.

◇겉도는 스쿨존 개선 사업

정부는 이 같은 스쿨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3년부터 어린이보호구역 개선 사업을 실시하고 있지만 예산 부족과 원칙없는 우선 순위 선정으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실시하는 개선 사업에서 대구 지역 대상 초교는 188개나 되지만 마지막 1년을 남겨 둔 현재 사업을 실시한 학교는 2003년 25개교, 2004년 21개교, 2005년 22개교(예정)에 그치고 있다. 내년 한 해 동안 나머지 초교 사업들을 모두 끝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구시 관계자는 "정부는 지난 3년간 사업비 절반을 지원해 왔지만 2007년 이후 사업비는 해당 지자체에 모두 떠맡길 방침"이라며 "재정자립도가 낮은 대구로서는 당분간 재정 투입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대구 초교들은 우선 순위 선정에도 강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초교 한 관계자는 "정부는 과거 3년간 사고건수, 민원건수, 보호구역내 교통량 등으로 우선 순위를 선정했다"며 "교사와 학부모가 나서 사고건수를 줄여 놓으면 아무리 위험해도 사업 대상에서 제외되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