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새벽 그는 하늘로부터 "행복하라"는 말이 들려오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날 낮, 우체통 문을 연 그의 눈을 파고드는 미국 법원 발송 우편물, 예순다섯 나이 그의 심장은 마구 떨렸을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보호관찰 종료' 통보를 확인하는 순간 지난 10년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을 테고, 아마도 그는 붉어지는 눈시울을 문지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으리라.
◇ 로버트 김(김채곤)이 4일 마침내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됐다. 미국 해군정보국 컴퓨터 정보 분석관으로 근무하던 1996년, 미국의 북한 관련 정보를 한국 정부에 유출한 혐의로 체포됐던 그가 도합 9년 8개월 만에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당초 예정된 2007년 7월까지의 자택 보호관찰 기간에 2년 앞서 종료됐다.
◇ 그동안 '로버트 김'이란 존재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의 아픔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조국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표를 던지게 만들었다. 39년 전 미국으로 떠나 그곳서 뿌리내려 살고 있지만 그에게 한국은 언제나 그리운 고향이자 모국이다. 그것이 9년 전 그로 하여금 미국인으로서보다 한국인으로서의 애국심을 발휘하게 했다. 하지만 그가 한국 정부에 건네준 정보는 다만 북한과 관련된 정보였을 뿐 미국을 배신하는 그런 정보는 아니었다.
◇ 그런데도 미국 언론은 로버트 김과 한국 정부 간의 커넥션 운운했고, 이 사건은 한'미 관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미국 눈치 살피기에만 급급했던 우리 정부는 비겁하게도 뒤로 숨어 버렸다. 한동안 그는 미국과 한국에서조차 버림받았다. 아들의 석방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부모가 잇따라 세상을 떴을 때도 불효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은 생활고에 시달렸고, 아내는 몇 년 사이 검은 머리가 백발로 변해 버렸다. 그나마 한국에서 발족한 구명위원회와 후원회, 각계 각층 사람들의 격려 편지가 그에게 현실을 버틸 힘이 돼 주었다.
◇ "이제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게 너무 기쁘다"는 로버트 김은 "자유의 몸이 된 것은 동포 여러분이 성원해 준 덕분"이라고 고마워하고 있다. 활짝 웃는 그의 사진 앞에서 우린 자꾸만 미안하고 부끄러워진다. 조국을 위해 자유를 박탈당했던 그에게 우리가 해준 것이 너무 없어서다. 내달 중순께 그가 부인과 함께 한국에 온다. 어떻게 이 마음의 빚을 갚을 것인가, 우리 모두 고민 좀 해야 할 것 같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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