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병원을 찾은 40대 중반의 한 부인은 남편과 자식을 위한 헌신 하나로 살아온 억척스런 여자다. 그런데 그녀에게 위기가 닥쳤다. 몇 년째 단골이던 한 신사가 그녀에게 사랑과 연민의 감정을 고백한 것이다. 처음엔 수치감과 두려움으로 그를 내쳤지만 차츰 그의 사랑과 인내가 느껴지면서 그녀의 마음도 울렁이기 시작했다. 살면서 이토록 가슴앓이를 한 적은 처음이라며 끝없이 눈물을 흘렸다. 남편에 대한 죄책감, 자식에 대한 수치심, 부도덕함에 대한 자기비난 등에 시달리면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그가 그립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불면증과 우울감으로 병원을 찾았다. 과연 이 철의 여인을 울린 것은 무엇인가. 세월 속으로 사라져가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일까.

사랑은 참으로 복잡하고 오묘한 감정이다. 사랑은 단순한 애정 이상이다. 신에 대한 사랑, 모성애, 부성애, 형제애, 자기애, 에로틱한 사랑, 친구 간의 우정뿐만 아니라 성적인 욕구가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부부간의 지속적인 결속감도 모두 사랑의 한 형태임이 분명하다. 그러면 이 부인의 경우는 무엇일까. 불륜인가, 로맨스인가, 사랑인가.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이런 질문에 해답을 던져준다. 주인공 프란체스카는 45세의 주부다. 그녀는 결혼한 후로 한 번도 자기의 고향에 가보지 못하고 자식과 남편만을 바라보며 사는 시골 아낙네였다.

어느 날 남편과 아이들이 며칠 여행을 떠나자 홀로 집에 남았다. 분주하고 남루한 생활 속에서 오랜만의 휴식이었다. 이때 우연히 길을 묻는 한 남자가 찾아든다. 유명 사진작가인 킨케이트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촬영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주변 지리에 익숙한 프란체스카는 길을 안내하고 저녁을 함께 먹는다. 아무 꾸밈없이 두 사람은 대화를 한다. 이보다 더 자연스럽고 진솔한 대화는 없으리라. 직업상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는 킨케이트는 그녀의 고향에도 가 본적이 있다고 했다. 프란체스카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고향 풍경을 전해 듣고 그에게 깊은 정감을 느낀다.

두 사람은 마치 데자 뷰(Deja vu: 처음 겪는 일인데 마치 이전에 경험해 본 것처럼 느끼는 현상)처럼 상대방에게 익숙해졌다. 한 번도 자신의 여성성에 대해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프란체스카는 자신의 결핍과 소망에 대해 관심 가져주는 남자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단 사흘간의 만남은 중년 남녀에게 마지막 운명이 되어버렸다.

사흘 후 프란체스카는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킨케이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14년 후 프란체스카는 익명의 소포와 편지를 받는다. 킨케이트의 유품들이었다. 킨케이트는 죽어서 사랑하는 프란체스카의 품으로 되돌아왔다.

터키 속담에 미숙한 사랑은 땅에서 오고, 성숙한 사랑은 하늘에서 온다고 했다. 성숙한 사랑을 위해서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심리학자 레빈슨은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결혼 생활에 만족도가 높은 사람은 갈등이 적고 여러 영역에서 즐거움이 많으며 정신과 신체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했다. 여성의 경우 건강과 결혼의 만족도는 더 관련이 깊다고 했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한 여성은 정신적, 신체적 문제도 많다는 것.

성숙한 사랑은 상대방의 성장을 도와주고 내 안정마저도 포기할 수 있는 적극적인 자세이다. 미숙한 사랑은 자기를 돌보아 달라고 요구하기만 한다. 자꾸만 허전해지는 가을 저녁, 나의 배우자에게 자상한 포로포즈로 허전함을 메워 보는 것은 어떨까.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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