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룻밤 사랑'이 '진지한 사랑'으로?

속칭 '하룻밤 사랑'(원 나이트 스탠드)이 진지한 사랑으로 출발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하고 있다.

5일 방송된 KBS 2TV '장밋빛 인생'에서 맹영이(이태란)와 지박사(남궁민)가 만나게 되는 결정적 사건이 술 취한 영이가 지박사와 하룻밤 자는 것으로 보여졌다. 남궁민은 이를 계기로 "연애하자"고 덤벼든다.

이후 드라마는 첫사랑인 친구의 남편과 불륜 관계에 있던 이태란이 남궁민과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KBS 2TV'웨딩'도 장나라와 이현우의 과거사중 하룻밤 사랑이 주요한 극적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이처럼 '하룻밤 사랑'이 드라마에서 노골적으로 보여지고 있다. 상반기 화제를 모았던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이아현과 권해효는 만나자마자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곧장 모텔로 향했다. 이후 권해효가 이아현에게 사귀자고 제안한다.

이들 드라마는 모두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거나 현재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때문에 드라마속 설정에 대한 파급력은 굉장하다. 성인들의 사랑이 성관계를 통해 시작될 수 있다는 의식을 심어줄 수 있을 정도다.

'장밋빛 인생'과 '내 이름은 김삼순'의 경우 모두 상대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선뜻 육체관계를 맺고 나서 남자가 여자에게 매달리는 형국이다. 남궁민은 이태란에게 "책임지라"는 말까지 한다.

올 초 방송된 MBC '원더풀 라이프'도 주인공 김재원과 유진이 해외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기가 생기는 것으로 설정됐으며, SBS '온리유'도 비록 하룻밤은 아니지만 외국에서 짧은 여행을 하는 동안 조현재와 한채영이 관계를 갖고 임신하는 것이 주된 소재로 등장했다.

영화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육체 관계 설정이 올들어 드라마에서 봇물터지는 주요 소재로 출현하고 있는 것.

최근 포털사이트 젝시인러브가 20~30대 회원 2만명을 대상으로 한 성의식 설문조사에서 남성의 95% 이상, 여성의 80%이상이 '혼전 성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 여성의 28%가 처음 만난 이성과 '원나잇 스탠드'를 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2003년 영화 '베터 댄 섹스' 홍보사가 20대 남녀 3천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83%가 '처음 만난 상대에게 먼저 하룻밤을 제안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또한 58%가 '사랑없는 섹스도 가능하다'고 답했으며, 88%가 '다음날 아침 그 전보다 훨씬 더 친밀감을 느낀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러한 급격한 성의식 변화가 드라마에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설정에 대해 그릇된 성의식을 만연화시킬 수 있다는 부정적 시선과 여성에게 강요된 순결 이데올로기를 벗어나게 한다는 긍정적 시선이 공존한다.

여성민우회 강혜란 미디어팀장은 "폐쇄적이고 엄숙했던 우리 사회 성문화가 서서히 열려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속에서 여성들이 과감하게 이혼하고 무일푼에서 성공 신화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듯 성이 사랑으로 가는 또다른 연결 고리가 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여성들의 압박감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팀장은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여성의 재혼을 통해 아이의 성을 바꾸는 문제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듯 성적인 문제 역시 말초적인 관심을 유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진지하게 접근한다면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드라마속 하룻밤 사랑이 오히려 남성들이 성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행사하는데 장애 요인을 거둬주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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