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57)의 이름 '대수(大洙)'는 '문명은 언제나 강가에서 시작됐으니 강처럼 살아라'며 그의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1968년 기타를 들고 미국에서 귀국해 국내 1호 싱어송라이터로 대중음악의 시작을 알렸으니 그의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은 제법 그의 삶과 들어맞았다.
이번엔 '한대수' 이름 세자가 그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처럼 제멋대로 쓰여진 상자 하나가 세상에 던져졌다. 12장의 CD와 1장의 DVD, 1권의 소책자로 한대수의 37년 음악인생을 정리한 박스세트다.
박스세트의 제목은 '더 박스(The Box)'다. 네모난 상자라는 의미와 여성의 성기, 관이라는 뜻도 있는 '박스'에 완전함을 가리키는 '더'를 붙였다.
"내가 태어난 곳도, 언제나 돌아가기를 원했던 곳도, 내가 돌아갈 곳도 모두 다 이 '박스'에요. 그게 내 음악이기도 하고."
1969년 첫 콘서트 '드라마센터 리사이틀'에서 노래하고 있는 21살의 한대수와 지난해 사진작가 김중만이 찍은 56살의 한대수는 '더 박스'의 앞뒷면에서 30년이 넘는 시간의 등을 맞대고 있다.
1974년 발매된 1집 '멀고 먼-길'부터 지난해 내놓은 '상처'까지 9장의 정규앨범, '1997 후쿠오카 라이브'와 '2001 라이브' 앨범 등 2장의 공연실황 앨범, 그 외의 곡을 수록한 '엣 세터라(Et Cetera)' 등이 들어있다.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촬영한 '그대', '옥의 슬픔' 등 8편의 뮤직비디오도 박스세트에 수록된 DVD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다. 한대수의 사진과 글이 실린 184쪽 분량의 소책자도 볼 수 있다.
"내 음악을 정리해야지 싶었어요. 저작권, 판권 등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느라 4년 동안 작업했죠. 시작할 때 완성될 가능성을 20%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나오다니 정말 감격스러워요."
'행복의 나라' 등 1집 수록곡은 그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힘들어 했던 10대 후반에 쓴 곡이다. 이제 60을 바라보는 그에게 40년 가까운 시간은 어떻게 흘렀을까.
"3개월 전에 몽골에 갔었어요. 평원이 끝없이 펼쳐진 그 곳의 밤하늘은 별빛 때문에 무척 밝아요. 달빛을 따라 집에 갈 수도 있지요. 제 인생은 그 곳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별똥별 같아요. 순간이죠."
옛날 곡들을 들으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는 그는 그 때를 "참 심각했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물론 지금도 음악을 할 때 그는 심각하다. 그러나 지금의 심각함은 '담담한 심각함'이란다.
"음악과 사진 등 제 예술은 현실과 고통을 기반에 두고 있어요. 사람 몸의 70-80%가 물인 것처럼 삶의 70-80%도 고통이라고 생각해요. 행복도 고통에서 나오니까요. 솔직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인류애 적인 공감대를 만들고 싶어요."
한대수는 당분간 바빠질 것 같다. 10-12일에는 EBS스페이스에서, 24일에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공연을 갖는다. 이번 달 말에는 동서양을 오가며 느낀 점, 안락사와 펑크록 등에 관한 생각 등을 담은 첫번째 에세이집 '올드보이 한대수'도 나온다. 사진 프로젝트도 현재진행형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한대수와 신촌 거리를 걸었다. 신촌에 살고 있는 그는 차이코프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하루에 두번씩 산책을 한다고 했다. 그는 산책하면서 구둣방 아저씨의 안부를 묻고 식당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길 한가운데 복잡한 사람들 속에서 혼자 걷고, 때론 이야기를 나누고, 일기를 쓰듯 곡을 만들고, 기타와 하모니카로 노래를 부르며 카메라 렌즈로 말을 건네는 한대수를 계속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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