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 음성판정자들이 살아가는 '도심 속의 섬' 애락원. 유아보육시설, 양로원, 청소년쉼터 등 소외된 이웃들에게 온정의 손길이 쏟아지지만 이 곳을 찾는 발길은 뜸하다. 부모가 살아있어도 고아로, 처자식이 있어도 홀아비로 또 홀어미로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음성 한센병 환자들은 1평 남짓한 방 한 칸에 우두커니 걸터앉아 사람을, 세상을 그리워하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도심의 섬
대구시 서구 내당동 12-37 일대 기독교 사회복지시설인 '애락원'. 한센병 음성 판정자 38명이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임시로 지은 슬레이트 지붕건물에서 산 것이 벌써 10년 째 접어들었고, 찾는 이 없다 보니 사람이 그리울 뿐이다.
"환자가 이리 오래 살면 안되는디. 미안시리버서. 미안해요, 미안해요."
김두남(96) 할머니는 귀가 먹었다. 손을 붙잡자 그 작은 눈망울에 금새 눈물이 맺혔다. 주위 환자들이 "증손자쯤 되겠구먼"이라고 큰소리로 말하자 "오냐 오냐, 내 복에 무신, 나병인디…."하고 돌아앉았다. 한센병 환자들 특유의 대인기피증 때문이다.
식당에 들어가니 정순분(71), 이정옥(70) 할머니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꽁치조림, 콩나물, 샐러드에 부침개, 튀김까지 음식을 하나하나 식판에 옮겨담고 있었다. "고생이 많으시죠"하고 인사를 건네자 얼굴을 가리며 등을 돌렸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 10여 개의 방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어른 남자가 닿을 듯 말듯 낮은 천장 아래 TV 한 대가 놓여 있다. 모두들 출입문에 걸터 앉아 하염없이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박희락(가명·66)씨는 "우리 생활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하겠나"며 "아들이 10월에 결혼하는데 가볼 수가 있을런지 몰라"라고 한숨 지었다.
▲이 설움 말로 다 못해
텃밭에서 만난 손리원(70·경북 상주) 할아버지는 한센병을 앓았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경계를 품는다고 한탄했다. "이웃 주민들이 우리 터에 들어와서 산책하고 벤치에서 쉬면서도 우리랑은 같이 못 살겠다 하더구만. 병원에 가면 모두가 빤히 쳐다보며 어찌 그렇게 싫은 눈빛을 보내는지. 특히 나이많은 어르신들은 '얻어먹는 나환자'로 생각하고 대놓고 싫은 소리를 막 해대."
전문가에 따르면 한센병은 성장기 때 제대로 영양섭취를 하지 못하면 생긴다. 이 곳 사람들은 대부분 일제시대, 6·25 한국전쟁 당시 기아, 빈곤으로 발병했지만 모두 음성환자들이라 전염가능성이 없다. 그러나 이웃의 거리낌은 너무 가혹하다.
정한선(65) 할머니는 "이 곳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한센병 환자를 간호하다 하늘나라로 다 보내고 남은 노인들"이라며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이 60세일 정도로 이젠 발병도 않는 병"이라 말했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75세로 나이가 가장 많은 환자가 100살.
"어딜 나갈 수가 있나요. 7, 8살 때 발병하면 집안 혼사길 막힌다고 바로 쫓겨났지. 부모 있어도 고아요, 형제가 있어도 없는 거지. 부모님 얘기하면 가슴만 아프니까 이제 그 얘기 하지 말아." 애락원 안 교회에서 기도하던 100세의 김순금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요
대구애락원은 1만5천 평 규모의 터를 가지고 있다. 한 때 1천 명 넘던 한센환자들도 대부분 사망해 현재 38명만 남았다. 때문에 쓰지 않는 건물이 4채나 된다. 애락원은 지난해 달성군 구지면으로 옮기려다 주민반대로 무산됐다. 지난 1913년 설립 당시에는 대구 외곽지였던 이 곳은 이제 도심 한 가운데가 됐다. 일부 주민들은 땅값 하락과 자녀교육 문제 등을 들며 싫어했다는 것.
"이 분들의 평생 소원은 첫째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고, 둘째가 그럴듯한 집에서 한번 살아보는 것입니다. 행복을 누릴 특권이 이 분들에게 있는데도 어찌나 반대가 많은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말입니다." 대구애락원 김동수 이사장의 안타까움이다.
한편 애락원 측은 지난 달 1천400평에 4층 규모인 '원생생활관'(기숙사)을 신축할 수 있도록 허가신청을 내놓았다. 체력단련실, 사무실, 기숙사방 등 모두 43실 정도를 갖출 건물은 법적하자가 없으면 조만간 공사에 들어가게 된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사진 : 찾는 이 없는 애락원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가을햇살을 쬐며 서로의 몸을 씻겨주고 있다. 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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