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평양 축구팀 간의 결전인 경평(京平)축구는 1929년 10월 8일 서울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처음 열렸다. 대회를 구상한 것은 조선일보사였다. 경성중학이 주축이 된 경성팀과 숭실학교가 주축이 된 평양팀의 경기에 관심이 집중됐다.
시합이 벌어진 사흘 동안 경기장을 찾은 사람만 7천명이 넘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요즘의 '구름 관중'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술집을 비롯해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어딜 가든 경기장을 오가는 응원객들로 넘쳐났다.
경기장(지금의 동대문 운동장) 환경은 열악했지만 축구를 구경하기 위한 사람들의 자리다툼이 치열했다. 버드나무 위에 올라가 경기를 보는 이도 많았다. 1920년대부터 각 지역에서 결성된 도시별 축구팀 중 가장 전력이 좋았던 두 팀의 경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평축구는 평양팀이 2승1무로 첫 대회를 우승한 뒤 1935년까지 양 도시를 오고가며 계속 됐다.일제시대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운동경기를 통해 풀던 때, 경평축구는 온 국민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됐다. 남북 통일축구대회에서 '조국통일'을 외치는 현재의 우리 모습과 별반 다르지가 않다.
▲1990년 무용가 한영숙 타계 ▲2001년 밀입국하려던 중국 동포 25명 시신 수장(水葬)사건 관련자 검거.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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