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겨레말큰사전' 편찬 이상규 교수 팀

"가시아버지, 곽밥, 원주필, 가두녀성, 마가리가 무슨 말인지를 아십니까?"

얼마 전 한 기업체에서 치른 신입사원채용 상식시험문제 중 일부다. 열 명 중 다섯은 아예 '손도 대지 못했다'. 다섯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답한 응시자는 한 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이 말은 장인, 도시락, 볼펜, 가정주부, 오두막을 지칭하는 북한말이다. 분단된 지 60년. 그동안 남에서는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표준어로, 북에서는 평양 중심의 문화어로 각각의 길을 걸어가면서 한반도의 잘린 허리처럼 말도 '분단의 비극'을 겪어왔다.

그랬던 남과 북의 언어가 60년 만에 '재회'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남과 북의 언어를 함께 집대성하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처음 물꼬를 튼 이후 지난 2월 금강산에서 '남북 공동편찬위원회'가 결성된 것.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 경북대 이상규 교수(국어국문학)의 연구실은 요즘 밤낮이 따로 없다. "북한의 소설가 황석중이 쓴 '황진이'를 한번 읽어보세요. 남과 북의 언어 이질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 수 있지요. 두음법칙, 띄어쓰기, 어휘, 관용어구, 수사법 등 모든 면에서 같은 민족이 쓰는 언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돕니다. 갈라선 남북의 언어를 하나로 '통일'하는 작업에 참여했다는 자긍심에 잠잘 시간도 아끼며 일하고 있지요."

이 교수가 신바람이 난 이유는 또 있다. 이번 언어통일 사업에 이 교수가 평생을 바친 각 지역 방언이 포함됐기 때문.

"그동안 우리 사회는 너무 서울 위주로 흘러오지 않았나요? 언어도 마찬가집니다. 표준어가 아니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우리의 문화유산인 방언을 얼마나 소홀히 여겼습니까. 이번 결정은 사라질 위기에 놓인 사투리에게 산소호흡기를 선물한 것과 같은 큰 의미가 있어요."

겨레말큰사전에 방언을 포함하자는 제안은 북측이 먼저 꺼냈다. 그 이유는 더욱 흥미롭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황해도를 찾았다가 한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게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나 봐요. 외국인도 아닌데…. 충격을 받은 김 위원장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 바로 '사투리를 살리자'였다고 하더군요."

이 교수는 "남북 간의 언어 규범에 대한 통일에서부터 지역 방언 조사 및 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일상용어 조사, 그리고 직업 부문별 전문어 조사 등의 작업을 단계적으로 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모두 30만 개의 어휘를 사전에 담을 겁니다. 이 조그마한 힘들이 모여 하나의 통일된 언어가 되는 밑거름이 될 겁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사진=남과 북의 언어가 60년 만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으로 위촉된 이상규 경북대 교수(왼쪽)와 대학원생들이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사전편찬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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