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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토익처럼 공부했더라면…."

"한글공부, 토익처럼 했더라면…."

'섭마치고 오~~3' '어솨염.' 지난 6일 오후 축제가 한창인 한 대학 복도 게시판에 학생들이 붙여 놓은 글이다. '수업마치고 오세요' '어서 오세요'란 뜻이지만 인터넷 채팅이나 휴대전화 문자에 생소한 사람이라면 도무지 알아차리기 힘든다. 이 정도는 애교로 볼 수 있겠지만 캠퍼스에서 만난 대학생들의 맞춤법, 글쓰기는 염려스런 수준이었다. 빠르고 재미있게 의미전달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나쁜 글 습관을 낳은 것이다.

한글날(9일)을 앞둔 지난 5, 6일 취재팀은 경북대, 영남대, 계명대 등 3개 대학생 184명을 대상으로 우리말 맞춤법, 받아쓰기 시험(10문제)을 치렀다.

결과는 평균 48.3점. 성별로는 남학생(93명) 평균 45.3점, 여학생(91명) 평균 51.4점이었으며 최고점인 90점이 6명, 10점을 맞은 학생도 3명이나 됐다. 만점자는 한 명도 없었다.

흔히 쓰는 '갔다 올게' '금세' '알아맞혀'를 모르겠다는 응답자가 대부분이었다. 무릅쓰다를 '무릎쓰다' '무릎스다'로, 떡볶이를 '떡뽂이' '떡뽁기'로 잘못 쓴 답도 많았고 대다수 학생이 '웬만하면'을 '왠만하면'으로 답했다.

처음에는 '이쯤이야' 하던 학생들 사이에선 당황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헷갈린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초등학교 이후 맞춤법, 받아쓰기는 처음'이라는 짧은 탄식도 나왔다. 정답을 듣고서도 어리둥절해 하거나 자신이 옳다고 우기는 학생도 있었다.

석주영(21·여·계명대 환경과학과) 씨는 "인터넷 채팅, 휴대전화 문자에 익숙하다보니 단어를 줄여 쓰는 일이 잦다"면서 "시험 답안지에 '왔다'를 '왔따'로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호정(20·여·경북대 임학과) 씨는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쓰려니 헷갈렸다"며 "부끄러운 생각까지 든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학생들이 쓴 리포트나 시험 답안지를 접하는 교수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계명대 환경대학 김해동 교수는 "한 문장안에 주어가 3, 4개 나오는 등 구어체와 문어체 문장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고 학위 논문 심사에서조차 서론-본론-결론의 기본적인 논리전개가 안 되는 글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경북대 국어교육과 이상태 교수는 "글쓰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논리적인 사고력이 떨어지게 된 것이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이런 사정은 굳이 대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매일신문사 기자 20명을 상대로 똑같은 시험을 치러보니 평균 점수가 63.5점에 머물렀다.

경북대 국어생활상담소 홍사만(한글학회 대구지회장) 국문과 교수는 "잘못된 언어습관이 고착되면 사고나 태도도 비뚤어지기 십상"이라며 "학교에서부터 우리 말과 글을 소중하게 쓰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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