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이 난의 '페이퍼 북'(9월24일자)에서 e-book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디지털 세계에 밀려나고 있는 아날로그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디지털은 확실히 편리하다. 아날로그로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엄청난 능력을 소유했기 때문에 디지털은 혁명적 가치로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그런 디지털에도 함정은 있다. 대담무쌍하고 다양하기 짝이 없는 게 디지털의 면모지만, 그 디지털을 움직이는 원천 요소인 동력이 바로 치명적 결함이다.
가상을 해보자. 만약 전기가 사라져 버린다면, 아니 전기가 없는 곳에서 디지털을 가동해야 한다면? 물론 전기를 저장해 두는 축전지라는 존재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게 영구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전기가 사라진 상황에서 디지털의 존재 가치는 없다. 만약 디지털로 모든 정보를 저장해 두었다면 그런 상황에서 어떤 수단으로 그것을 재생시킬 것인가. 찾아보자면 방법이 없지도 않겠지만 상상만 해도 끔찍한 노릇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한다. 절대적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금은 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어 버렸지만 태엽을 감아 돌려 듣던 수동식 축음기가 있었다. SP 레코드판을 숨 가쁘게 돌리던 그 기계는 전기가 없어도 지금 바로 가동시킬 수가 있다. 언제나 펼쳐 볼 수 있는 소중한 책처럼.
디지털의 편리함도 좋지만 책이 지니고 있는 탁월한 아날로그 세계는 우리의 숨결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담았다가 시공간을 초월한 우리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는 존재다. 우리가 우리 선대의 행적을 지금 기리듯이. 그러므로 책이라는 존재는 불멸의 사랑과도 같은 것이다.
박상훈(소설가·맑은책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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