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음악 속의 대화

가을 사이로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하늘이 내려와 계곡물에 잠기니 온갖 빛깔이 더욱더 선명하다. 바쁜 일상 속에 거칠어진 마음을 흐르는 물에 맡기니 떨어지는 낙엽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이런 때는 누군가를 만나서 차 한잔을 나누며 무슨 얘기든 나누고 싶고 책을 펼쳐서 고서(古書)의 위인들을 대하고 싶다. 또는 미술작품을 통해 화가나 조각가들과 만남도 좋으며 특히 흑백의 농담(農談)사이로 여백의 미가 잘 살려진 한국화를 보며 우리네 옛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이와 더불어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함으로써 순수한 작곡가의 영혼과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것도 이 가을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은 단지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기분이 좋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가령,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감상한다는 것은 작곡 당시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베토벤이 인생의 고뇌와 좌절을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대한 진솔한 삶 그 자체를 드라마틱하게 드러내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곡을 듣는다는 것은 곧 베토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와 보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또한 평생 동안 클라라 슈만을 사랑하며 독신으로 지냈던 브람스.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슬픔과 비탄에 빠진 그는 성경의 내용을 토대로 사랑의 위대함과 인생의 허무함을 '네 개의 엄숙한 노래'로 표현했다. 그리고 10개월 후 그 자신도 세상을 떠났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노년의 고독한 한 영혼을 만날 수 있고 또 그의 깊은 사랑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게 한다. 어디 그뿐이랴! 말러의 교향곡을 들어보면 죽음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면서 고뇌했던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곡을 들으면 우리네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그것을 사랑했던 그의 마음에 동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음악을 통해 작곡가와 만난다는 것은 내면에 있는 마음의 문을 열고서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며 서로간에 울리는 영혼의 메아리를 듣는 것이 아닐까 한다. 깊어가는 가을,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나 슈베르트의 예술가곡, 아니 어떤 예술가의 작품일지라도 그들과의 진정한 만남이 있다면 그 시간만큼은 우리 마음이 풍요로울 것이다.

김동학(작곡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