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관리법' 개정에 따라 '추곡수매제'가 폐지되고 '공공비축제'가 시작되는 첫 해인 올 가을 농촌에서는 추수를 채 시작도 하기전 쌀 값이 하루가 다르게 폭락해 이를 바라보는 농민들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따라서 가을걷이를 앞두고 신명나야할 농촌에서는 풍년가는 고사하고 농민들의 한숨소리만 황금들녘에 가득차 있다.
◆추수기 들녘, 타는 농심(農心)
지난 5일 오전 11시 의성 다인면 서릉들녘. 한국농업경영인 다인면회 소속 한 농민은 "작년 안계평야에서 우리 쌀 산업을 지키기 위해 상여와 수백 개의 만장을 앞세우고 추곡수매제 폐지 반대를 외치고 난 뒤 꼭 1년만에 쌀 값 폭락이라는 현실이 눈 앞에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농정을 비난했다.
서릉들에서 벼 수확을 시작한 박혜숙(여·59)는 "작황은 무슨 썩어 빠질 작황, 올해는 수확을 해도 신명이 나질않는다"면서 "하루가 다르게 쌀 값이 떨어지는 데 무슨 힘이 나겠는냐"고 반문했다. 벼농사 4천 평을 짓는다는 박 씨는 "옛날에는 타작(벼를 떠는 일)하는 날이면 저절로 흥이나 일꾼들에게 줄 새참을 머리에 이고도 수km씩 뛰어다닌 적이 있었다. 이제 쌀농사를 지어 막내아들 대학도 못시킬 판"이라고 쌀 값이 치솟았던 10년전을 떠올렸다.
벼농사 8천평을 짓는 박세한(69·의성 다인면 도암리) 씨는 "요즘 경로당이나 식당, 다방 등 어디를 가도 쌀 값 떨어지는 것이 화제가 되면서 농민들 대다수가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한국농업경영인 박만진(46·다인면 서릉리) 의성군연합회장은 "그래도 작년까지는 정부가 이중곡가제를 시행해 그런대로 버텨왔으나 공공비축제로 전환되는 올해부터는 시중 쌀값이 상상도 못하는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아 앞이 캄캄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 회장 경우 쌀전업농으로 농업기반공사 등에 임대한 논 8천평을 포함해 쌀농사만 2만평을 지어 매년 1천200포대(40kg 기준) 가량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가족들과 친지 식량용으로 100포대를 남겨 두고, 150포대(870만 원)는 정부수매, 950포대(5천350만 원)는 농협 자체수매에 응해 6천220만 원의 수익을 올렸으나, 올해는 작년 보다 소득이 10%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정부가 '추곡수매제'를 '공공비축제'로 전환하면서 고정직불금(논 1ha당 60만 원 보전) 및 변동직불금(쌀 80kg들이 1가마당 17만70원 을 기준으로 시장가격이 하락할 경우 85%를 보전)'으로 농민들의 소득을 보존해준다고 하지만 시중 쌀값이 폭락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난해 보다 최소 500만 원 이상의 소득 감소는 불가피하다는 게 박 회장의 설명이다.
◆쌀 값 하락 어디까지
(사)한국양곡가공협회중앙회(이하 한국양곡중앙회)가 지난 4일 2005년산 전국 벼(40kg들이 기준) 가격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 4만7천∼ 5만1천 원 △충남·북 4만1천∼4만3천 원 △전남·북 3만8천∼4만3천 원 △경남·북 4만∼4만2천 원에 각각 거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달 중순 한국양곡중앙회가 전국 회원사의 가공 쌀 산지 공장 출고가격(20kg들이 기준) 조사에서도 △경기도 3만7천500∼3만9천 원 △충남·북 3만2천500∼3만4천 원 △전남·북 3만1천∼3만7천 원 △경남·북 3만3천∼3만7천500원이었다.
경북 경우 지난해 같은 기간 농협과 민간 RPC(미곡종합처리장)들의 벼 자체 매입가격 5만∼5만3천 원에 비하면 무려 20% 이상 하락한 셈이다. 또 경북지방은 작년 수확기 16만 원(80kg들이 기준)에서 거래되는 산지 쌀값이 현재는 14만5천 원으로 폭락하는 등 산지 쌀값이 하루가 다르게 추락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양곡중앙회 회원사들은 쌀값 하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자체 수매 마저도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한국양곡중앙회 이영락 회장은 "대부분의 회원사들이 올해 자체 수매를 꺼리고 있다"면서 "농협이나 민간 RPC들이 2004년산 벼를 적게는 수 천 포대에서 많게는 수 만 포대씩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최근 2년간 수확기 이후 쌀값 하락이 이어진 데 따른 불안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수입쌀이 국내에 시판될 경우 쌀값 하락을 더욱 부채질 할 것이라는 전망도 RPC들이 자체 수매를 꺼리는 이유 중의 하나"라며 "이같은 전망은 농업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쌀농가 피해 없다.
수확기 쌀값이 폭락하면서 농민들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농협과 민간RPC들은 자체 수매를 꺼리는 등 쌀값 파동 속에서도 정부는 농가소득에는 큰 피해는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직불금 보존제도는 산지 쌀값과 올해 목표가격(80kg들이 기준 17만70원)의 차액 85%를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로, 정부는 올해 쌀값이 5%가량 떨어질 것을 기준해 쌀소득보존직접지불금으로 8천549억 원의 예산을 편성해두고 있다.
농림부 소득정책과 쌀소득보존직접지불금 실무담당자 안재록 씨는 "산지의 시중 쌀값이 폭락하는 사태가 오더라도 정부가 보존직접지불금을 농가에 지원하기 때문에 실제로 농민들의 소득은 지난해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대해 한국농업경영인 박만진 의성군연합회장은 "수확을 시작도 하기 전인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쌀값이 15% 이상 폭락했다"며 "현재 1ha에 60만 원인 '고정직불금'을 130만 원으로 인상하고, 올해부터 3년간 목표가격(80kg들이 기준 17만70원)을 10년으로 연장해 법제화할 것"을 주장했다.
군위의성·이희대기자 hdlee@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