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人生에는 은퇴가 없다-(19)흙, 땀, 신의 조화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한번은 장맛비에 변소가 차 올라 오물을 옹기단지에 채우고 지게를 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만 중심을 잃고 고꾸라져 오물을 흠뻑 뒤집어쓴 일이 있었다.

그렇게 농사일을 거들며 보낸 유년시절의 고향은 가난했지만 정이 넘치는 곳이었다. 1970년대의 농촌은 새마을 깃발 아래 서로를 북돋우며 희망찬가를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산업화와 개방화로 인해 빈 집이 늘고 부채가 쌓이면서 언제부턴가 활력을 잃어갔다. 정부의 막대한 예산 지원도, '신토불이'의 구호도 농민들의 주름살을 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 역시 농촌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일해 왔지만 지나고 보니 아쉬운 점이 많다.

그러나 지난 세월 동안 농심과 함께 하면서 깨우친 것은 하나 있다. 우리 농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위정자(爲政者)들의 진솔한 말 한마디,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라는 것이다.

1993년 관선 경북지사 시절 이문희 대주교의 초청을 받아 가톨릭농민단체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는 7년을 끌어오던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 직전이었던 터라 농민들이 연일 거리를 메우고 있을 때였다.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가톨릭 농민회 회장은 정부의 농정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기가 무척 곤혹스러웠다. 잠시 후 내가 이야기할 순서가 되었는데, 앞으로 나가 가톨릭 신자인 농민들의 얼굴을 보니 그들의 절박한 심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희망이 없으면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 농촌은 말할 수 없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가지고 농업을 지키고 살려내야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메었듯이 나도 그 십자가를 여러분과 함께 메고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나를 외면했던 가톨릭농민회 회장이 "뭔가 통하는 게 있네요"하며 웃었다. 이후 그는 나와 터놓고 농업 문제를 이야기하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다.

지금도 농촌은 어렵다. 하지만, 최근 들어 농민들 스스로 희망의 움을 틔우는 사례가 늘고 있어 여간 반갑지 않다. 봉화 춘양목 송이마을, 성주 도흥리 참외마을 등은 그 자체가 신뢰받는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다.

이처럼 우리 농민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땅에 희망을 갖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한 겨울의 추위를 온전히 견뎌야 얻을 수 있는 마늘 한 쪽은 공장에서 몇 초 만에 뚝딱 생산되는 제품과는 그 본질이 다르다. 쌀 한 톨, 사과 하나에도 흙과 인간의 땀'두뇌, 그리고 적당한 햇빛과 비를 주는 신의 조화가 모두 녹아있지 않은가. 농업은 영원히 버릴 수 없는, 우리가 목숨을 의탁하고 있는 생명산업이다.

이의근 경북도지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