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잘 놀고 왔니? 그런데 웃지 않는 걸 보니 별로 재미가 없었나 보구나."
어서 씻고 맛있는 간식 먹으라는 엄마의 말에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잠시 주저하다가 놀이터에서 어떤 아저씨가 자신의 몸을 만진 일을 얘기하자 "용기 있게 소리를 잘 질렀구나. 엄마한테 말한 건 잘한 일이란다" 하고 다독거린 뒤 경찰에 신고하는 엄마….
얼마 전 대구시 북구 구암동 '선우어린이집'에서는 재미있는 인형극이 열렸다. 바로 옆 '꼬마선우놀이방' 유아들을 포함해 인형극을 보던 4∼7세 어린이 60명은 나쁜 아저씨가 경찰에 혼나는 모습을 보며 신나게 박수를 쳤다.
"내 몸은 소중해요, 안돼요라고 말할 수 있어요?"
'말해요'라고 적힌 풍선을 든 선생님들의 물음에 "예"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하는 아이들. 김병현(7) 군은 "아주 재미있었어요. 내 몸은 소중해요"라며 인형극을 본 느낌을 또박또박 말했다.
이날 인형극 공연을 한 주인공은 '좋은 세상 인형극단'.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대구지부 대구여성폭력통합상담소 부설 극단으로 30, 40대 주부 등 여성 단원 6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부터 대구지역 민간보육시설인 어린이집을 찾아다니며 인형극을 선보인 이들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인형극을 통해 성폭력 예방 교육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효과를 확인하고 지난 4월 인형극단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친부·의부에 의해서도 성폭력을 당하는 상담사례가 적잖게 있습니다. 특히 7∼9세 때부터 성폭력인 줄도 모른 채 피해를 입어 학교 부적응, 자살 충동까지 보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대구지부 대구여성폭력통합상담소의 허향 씨는 "요즘 아이들의 성폭력 피해사례를 보면 주변 사람에 의한 경우가 78%를 차지하고 있다"며 "어릴 때부터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즐겁게 보고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인형극을 도입하게 됐다는 것.
임경미 '좋은 세상 인형극단' 단장은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착하다는 교육을 받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해도 아이들은 거부하지 못 하는 것 같다"며 "아이도 싫은 느낌이 들 때는 단호히 싫다고 말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남매를 키우며 중·고등학교에 성교육도 나가는 임 단장은 "부모들이 배꼽 위 눈·코·입 명칭은 정확히 가르치면서 배꼽 아래는 '잠지', '고추'라고 말하는데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며 "아이들이 궁금해 할 때 고환, 음경 등 명칭을 정확히 알려주고 몸의 사적 공간은 함부로 공유할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대구지부 유연희 소장은 "인형극을 본 어린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성교육을 하기 쉬워 어린이집의 공연 문의가 많다"며 "장애인 어린이집, 복지시설 등지에서도 공연해 좀더 많은 어린이들이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했다. 성폭력 전화 상담 053)745-4508.
김영수기자 stella@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